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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경상도 사나이’면 다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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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경상도 사나이’면 다냐구

입력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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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재주도 없고 취미도 없고 휴일에도 거실 쇼파에 하루 종일 드러누워서 텔레비전 보며, 입 쩍~ 벌리며 하품이나 하고. 직업이 이러니 아이들 데리고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해요. 제가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라서 그런지 가족한테는 잘 못해요. 후배들은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주고 소주도 잘 마시고 하는데…."

송강호는 인터뷰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그는 부산 출신이다) ‘넘버 3’에서 청부살인업자로 출연해 "최영의란 분이 있다. 이런 식이다. 소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나 최영의야. 그리고 소뿔을 탁 잡고…"라는 명대사로 이름을 알릴 때부터, 형사로 나오든 아버지로 나오든 그는 늘 ‘경상도 사나이’다웠다. 여기서 경상도 사나이답다는 것은 ‘마초적’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데, 영화 ‘남극일기’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다섯 명의 탐험 대원을 채찍질하며,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도 ‘도달불능점’에 가려는 탐험대장 최도형은 지독하게 엄격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경상도 태생과 마초적 남성상 연기는 분명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듯 하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은 경상도 출신 스타를 인터뷰 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지만, 실은 이 ‘경상도성’의 정체란 것을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맡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역할과 달리, 실제로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입니다."(탤런트 강동원)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는 요즘도 TV에 나오는 절 보면 늘 잘못한 점을 지적하세요."(가수 테이) "집에서는 영락 없는 경상도 사나이에요."(야구선수 이승엽)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해도 되나?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와 아들을 꾸짖는 것은 무슨 관계인가? 영락 없는 경상도 사나이가 집에서 보여주는 행동양식은 도대체 뭔가?

곰곰이 뜯어보면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은 삶에서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다정하지 않아도, 잘 해 주지 않아도, 무뚝뚝해도, 엄해도 "나, 경상도 사나이야" 한 마디면 모든 게 용인된다는 뉘앙스다. 끊임 없이 여자들을 울리면서도 "난 원래 나쁜 남자야"라고 말하는 이나, "저 원래 야근 못해요"라고 일을 미루는 얄미운 동료처럼, 자신의 단점을 선천적인 탓으로 돌려 책임을 피해가는 방법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도대체 그 정체가 뭔지 주변의 경상도 사나이들에게 좀 물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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