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삼각형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 색깔로 나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과학적 상식이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창문 가리개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곳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빨강부터 보라까지 아름다운 빛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비가 갠 뒤 생기는 무지개는 백색광인 햇빛이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들에 의해 나뉘어지는 현상이다.
프리즘을 이용해 햇빛을 무지개 색깔로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랜 옛날부터 알려졌다. 중세 사람들은 햇빛 자체가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로 구성돼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프리즘의 유리가 백색인 햇빛을 변질시켜 색깔을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해 논쟁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아이작 뉴턴은 두 개의 프리즘을 연이어 배치한 후 첫번째 프리즘으로 분리된 무지개 색깔들이 또 다른 프리즘을 통과하면 합쳐져 다시 백색광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햇빛은 연속적인 다양한 색깔로 구성돼 있고 이들이 합쳐져 햇빛과 같은 백색광을 만들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 천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프리즘을 통과해 색깔 별로 나뉘어진 빛의 띠를 조사하던 중 빨간색 너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온도계를 갖다 대자 수은주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곳에는 우리가 오늘날 적외선이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선(熱線)이 자리잡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빨간 빛의 반대편인 보라 빛 너머 공간에는 감광(感光)작용을 일으키고 우리 피부를 태우기도 하는 자외선이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됐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이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빛은 ‘전자기파’라고 하는 폭 넓고 보편적인 현상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대 과학이 밝힌 전자기파 스펙트럼은 자외선 쪽으로 엑스선 감마선 우주선 등 강한 에너지대의 빛이 펼쳐져 있고, 적외선에 이웃해서는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의 전파가 연결돼 있다. 이들은 모두 초속 30만㎞로 진공을 날아가는데, 그들이 갖는 파장과 진동수를 이용해 구분이 가능하다. 전자기파의 존재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과학자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이론적으로 예측됐다. 독일 과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는 1882년 실험을 통해 전자기파의 존재를 확인했다. 헤르츠는 오늘날 우리가 ‘라디오파’라고 부르는 전파를 발생시킨 후 이 전파가 빛과 똑같이 반사되거나 굴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이 원리를 토대로 이탈리아 발명가 마르코니는 1901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선신호를 송·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눈은 왜 전자기파의 일부분인 가시광선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이 방출하는 빛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태양에서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을 살펴 보면 우리 눈이 느낄 수 있는 가시광선이 가장 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외선이나 적외선 파장 영역으로 가면 빛의 세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태양이 내리 쬐는 가장 강한 빛의 파장 대역에 적응하도록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셈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빛, 즉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다른 부분도 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갖게 됐다. 천문학자들은 가시광선을 모으는 망원경뿐 아니라 자외선 망원경, 적외선 망원경, 엑스레이 망원경 등 다양한 종류의 망원경을 사용해 우주에서 날라오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풍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분석한다.
인간의 눈이 감지할 수 없는 빛의 영역을 보도록 도와 주는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보다 일찍 다가온 무더위 속에 시원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때, 누군가 적외선을 감지하는 투시카메라로 몸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찍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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