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1일 영변 원전에서 폐연료봉 인출작업을 끝냈다는 주장은 핵무기 추가 확보에 한걸음 더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추가 조치를 막으려는 한국 미국 중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실상의 도발이다. 따라서 북핵 긴장도는 더욱 치솟고, 6자회담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불장난을 지속하는 북한의 의도는 명백하다. 국면이 어떻게 전개되든 핵무기를 증강하는 조치를 당분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2월10일 핵무기 증강 의지를 밝힌 뒤 한미 양국의 예상대로 두 달이 채 못돼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시켰다. 이어 한 달 만에 폐연료봉을 인출했다. 아마도 폐연료봉 냉각이 끝나면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생산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이다.
지난달 18일 "원전가동 중단은 추가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의 언급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2개월로 예상됐던 폐연료봉 인출 작업이 1개월 만에 종료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북한은 "함북 길주의 핵실험장 건설 움직임 말고도 여러 카드가 있다"고 시위한 셈이다.
북한이 이처럼 국면을 위태로운 쪽으로 모는 것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추가 조치를 취할 때마다 미국 내에서 외교 실패론이 제기되고 부시 행정부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럴 경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타협이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물론 연료봉 인출이 플루토늄 확보로 이어지기까지는 몇 달이 더 소요돼 당장 파국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와는 달리 아예 핵무기 보유국의 위상을 가지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긴장과 이완 상황의 반복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핵무기 보유국이 돼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추인을 받으려는 시도가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측의 벼랑끝 전술이 긍정적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북한의 기대와는 달리 양보대신 강도 높은 압박카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6자회담 재개는 점점 멀어지면서 북핵 문제는 극단의 위기로 치닫게 되며, 그 위기로부터 북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인출된 폐연료봉 어떻게 처리되나
영변 5㎿ 원자로에서 인출된 폐연료봉 8,000개는 냉각, 재처리, 무기화 과정을 거쳐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인출된 폐연료봉은 일단 원전 내 냉각 수조에서 3개월 정도 보관된다. 고열의 연료봉을 식히는 냉각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냉각된 폐연료봉은 재처리 작업장으로 옮겨진다. 재처리 작업은 폐연료봉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239를 추출하는 것.
재처리는 원전 내 방사화학 처리시설 또는 제3의 장소에서 진행된다. 지난해 1월 영변을 방문했던 미 과학자는 영변 방사화학실험실을 풀가동할 때 폐연료봉 375㎏정도를 재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8,000개의 연료봉이 50,000㎏ 정도이니까 계산상으로는 130여일 소요되나 실제 6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재처리되면 최소 핵무기 2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영변원전이 정상 가동할 경우 매년 6~7㎏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고 관측해왔다. 영변원전이 2003년 2월부터 올 4월까지 가동됐으니 산술적으로 12~14㎏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1~2년의 짧은 주기로 핵 연료봉을 교체하면 플루토늄239의 농도가 93% 이상인 무기급 물질을 다량 추출할 수 있다"며 최대 40㎏의 플루토늄 추출을 예상한다. 플루토늄은 북한의 의지에 따라서는 곧바로 핵무기로 전환될 수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中 "중국식으로 北 설득할 것"/ 서울주재 외교관 밝혀
서울 주재 중국 고위 외교소식통은 10일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만나"중국은 중국식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중국도 미국처럼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중국식 설득은 미국과 방법이 다를 수 있다"며 중국은 미국식 압박전략을 택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이 모색하는 방법은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타협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북미 양국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소식통은 "대북 경제지원이 동반되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은 북한의 성의가 전제돼야 가능하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대북 제재 가능성에 대해 "유형, 무형 문화재가 따로 있듯 무형의 제재도 있다"며 핵실험 등이 감행될 때는 대북 지원중단 등 유형의 제재도 가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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