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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현주소와 미래/ 양정高100주년 기념 국내외 교육자 3인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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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현주소와 미래/ 양정高100주년 기념 국내외 교육자 3인 좌담

입력
200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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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私學)의 역할은 독창성과 자율성 입니다. 정부가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지원보다는 통제 위주의 정책을 펴는 한 사학은 퇴보를 거듭할 뿐 입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30년 이상을 사학교육에 종사하고있는 3인의 국내·외 교육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자리를 함께 해 사학의 현 주소와 미래 전망 등을 놓고 2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엄규백(72) 서울 양정고 교장, 존 서튼(69) 전 영국 중등교장협회 사무총장, 프랭크 벨레이어(57) 캐나다 셔우드중학교 교장이 주인공들이다. 서튼 전 총장과 벨레이어 교장은 이날 양정고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국제교육세미나에도 참석, 21세기 사학이 나아갈 방향과 역할 등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사회=김진각 사회부 차장대우

●엄규백 교장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 졸업 후 서울대에서 15년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1973년부터 양정고 설립자인 조부의 뜻에 따라 양정고 교장을 맡고있다. 현직 최고령 고교 교장이다

●프랭크 벨레이어 교장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출신으로 타즈마니아에서 3년간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다. 이후 30여년간 일선 학교 교감과 행정책임자 등을 거쳐 셔우드중 교장으로 있다.

●존 서튼 前사무총장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을 나와 퀸 엘리자베스고교 등 사립학교에서 15년동안 교장을 지냈다. 정년 퇴직 후 중등학교 교장 모임인 중등교장협회 사무총장에 선임돼 10년간 일했다.

-한국은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로 시끄럽다. 사학 운영자들은 사학법이 개악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있다. 정부가 사학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러낸다. 외국은 어떤가.

서튼 전 총장=영국의 사학은 국가 교육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영국에서의 사학교육은 거의 1,000년동안 변함없이 지속되고있다. 교육은 교회의 독점적인 특권이었고 수도원은 지식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기독교 계열 사립학교는 정부 통제 없이 학생들이 원하는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벨레이어 교장=캐나다에서는 단 한차례도 동일한 교육정책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다. 개별 주정부는 고유한 교육기구를 조직하고 권한을 행사할 헌법상 재량권이 있다. 교육을 장악하는 어떠한 연방부서나 부처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주에서 학교설립은 공립학교, 종교학교, 사립학교로 나뉜다. 1830년대까지 대부분 학교는 사립이었지만 지금은 캐나다 학생 중 5%정도만 사립학교에 다닌다.

엄 교장=한국의 경우 사학법이 개정되면 사립학교들이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자주성이 오히려 위축되지나 않을 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다. 우리 정부는 영국과 캐나다의 사립학교 운영 사례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한국과 외국 정부가 사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건립이념을 살린 교육의 파트너로 이해하는 지, 아니면 공립학교와 이름만 다른 일개 학교로 생각하는 지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벨레이어 교장=캐나다는 사학을 공교육의 큰 축의 하나로 여긴다. 공교육 시스템은 크게 두갈래다. 사립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톨릭스쿨과 공립학교가 그것이다. 시민 세금이 각 주가 교육부문에 쓰는 재정을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

서튼 전 총장=역사적으로 영국 정부는 좌파였다. 공교육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립학교에 대한 시각도 당연히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립학교에 대한 간섭이 전혀 없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엄 교장=정부는 현행 사학법으로도 사학이 안고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데 고치려 하고있다.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들이 들어와 학교를 운영토록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는 가. 사학법 개정안은 개별 사학들의 창학 이념을 접게 만들고 독자성을 훼손시킬 뿐이다.

-사학의 딜레마는 재정이다. 한국의 사립학교는 돈 가뭄에 시달리고있다. 사학들은 저마다 타개책을 마련하느라 골몰하고 있지만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있다.

서튼 전 총장=영국 사립학교는 재정의 대부분을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사장이 출연하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대기업 상공회의소 등이 기금을 내고있다. 일부 학교만 개인이나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을 뿐 대다수 독립학교들은 자선기금으로 운영되거나 신탁기관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재정을 통제하는 일종의 독립체 성격을 지닌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운영위원단을 구성, 추가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한다.

벨레이어 교장=캐나다 사립학교들은 모든 주에서 개별 교육과정과 학교시설 기준 등에 대해 주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5개 주만 사립학교에 재정을 100% 지원하며 나머지 주들은 제한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이 학교들은 등록금을 학교 예산의 주 수입원으로 삼는다. 대부분은 수업료에서 해결하고 영국처럼 기부금을 받기도 한다. 학교 이사장들이나 학부모가 후원을 하는 부분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엄 교장=외국이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 사립학교는 재정을 확보하는 데 있어 여러가지로 제약이 매우 심하다. 기부금을 냈을 때 면세가 되지 않는다.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학교운영위원회 발전기금도 걷지 못한다. 교육 정책도 사립학교 재정을 제약하는 쪽으로만 추진되고있다. 학교재단의 수익사업이 한정되어 있어 살림살이가 극도로 어렵다.

-사학의 활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엄 교장=독자성과 자립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느냐에 달려있다. 사학은 사학답게 운영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사학에 대해 인건비보조 형식으로 주는 재정결함 보조금이 아닌 공교육 예산으로 사용되는 기본교육비를 지원해야 마땅하다. 광복이후 사학이 공립학교 못지않게 국민기본교육에 충실히 노력했기 때문에 더욱 타당성을 지닌다.

-한국은 대학입시가 고교교육의 전부라고 말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입시위주의 고교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서튼 전 총장=영국은 대입 문호가 매우 까다롭다. 18세에 보는 대입 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3개의 전공 선택과목을 골라 고득점해야 옥스퍼드나 캐임브리지 같은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 좋은 대학 문이 좁다 보니 많은 학교가 입시시스템을 바꾸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는 고교교육이 이처럼 입시위주로 가는 것에 절대 반대이다. 영국에서도 적성과 인성을 키우는 교육 위주로 고교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다.

벨레이어 교장=캐나다도 사정은 한국과 비슷하다. 대학에 진학하기위해 4차례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대입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캐나다 일부 주에서는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입시지상주의를 막기위해 적성과 인성에 바탕을 둔 교육개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엄 교장=중등교육은 올바른 인간교육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적성을 찾아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지금처럼 단발 승부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매우 불행하다. 입시만이 아닌 다양한 교육의 등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영국과 캐나다는 한국 조기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나라들이다. 현지에서는 이 같은 조기유학현상을 어떻게 보고있나.

벨레이어 교장=언어능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다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가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조기유학은 권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튼 전 총장=유럽의 중·고교생들은 1년에 한 차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 중 하나를 정해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레 공부하고있다. 10년 후면 세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 세계인들과 자신의 흥미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기회는 좋은 것이다.

-영국의 이튼스쿨, 미국의 필립스아카데미 등 세계 유명 중등학교는 대부분 사학이다. 이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서튼 전 총장=아주 오래전부터 좋은 학교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다. 언제나 한 곳에 멈추지 않는다. 최근 수년간 재정과 학교 운영 상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벨레이어 교장=세계 명문 사립학교는 평가체계가 매우 뛰어나다. 개방적인 학습을 시행하면서도 엄격한 평가체계를 갖추고 있는 게 이들의 저력이다.

정리=조윤정기자 yjcho@hk.co.kr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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