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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의료복지 르포-노인 케어 누가, 어떻게?] (1) 미국 워싱턴병원의 현대판 왕진 -메디컬 하우스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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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의료복지 르포-노인 케어 누가, 어떻게?] (1) 미국 워싱턴병원의 현대판 왕진 -메디컬 하우스콜 프로그램

입력
200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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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20년 후면 다섯 명중 한 명이 65세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더구나 핵가족화로 노인 케어(Care)는 더 이상 가족에게만 미룰 수 없는 실정이다. 노인을 위한 보건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누가, 어떻게 펼칠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2007년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을 목표로 7월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를 앞두고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노인 케어 현장을 찾아가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모델을 모색해본다.

혼자 생활하기 힘든 병든 노인을 위해 노인전문 병원과 요양원을 늘리는 것만이 해결책인가. 이미 100년 넘게 요양원을 운영해온 미국의 노인케어 전문가들은 이런 시설 위주의 노인 케어보다는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노인케어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가나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인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노인 입장에서도 시설에 맡겨지는 것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얼 카터의 집을 가다

워싱턴DC 로드 아일랜드 노스 웨스트 주택가. 워싱턴병원 노인병 전문의 에릭 디 용(Eric De Jonge)박사와 얼 카터(Earl Carter 66)씨 집을 찾았다. 10년 전 자동차 사고로 팔다리가 마비돼 24시간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그는 워싱턴 대학병원이 실시중인 가정진료 ‘메디컬 하우스 콜 프로그램’(Medical House Call Program: 이하 MHCP로 표기) 환자다.

낮시간에 그를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어둠컴컴하고 습한 실내. 가난하게 혼자 살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저소득층 노인의 집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팔다리는 가늘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의사를 보더니 반가운 기색을 하며, 얼마 전까지 고생하던 폐렴증세가 훨씬 나아졌다고 자신의 최근 증세를 설명했다. 디 용박사는 그가 덮고 있던 시트를 제치고 그의 팔다리를 손으로 꽉꽉 눌러가며, 관찰했다. 오랜 세월 사용하지 않은 팔다리는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요."(사지 마비 상태에서 다리의 통증을 느끼다니… 의사에게 물어보니 가상 통증일 수도 있고 미약하게나마 신경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

디 용박사가 환자를 다시 옆으로 누였다. 욕창이 심했다. "포지션 체인지." 의사는 사회복지사에게 욕창을 빨리 낫게 하려면 자주 몸의 위치를 바꾸어주라는 처방을 내렸다. 또 "배변은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얼마 전부터 밤시간에 자신을 돌보러 와주는 동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식사량을 일부러 줄여, 만성변비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디 용박사는 환자를 토닥이며 ‘식사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용 박사는 그의 침대 옆 약상자를 세밀히 살피며 현재 복용중인 약 종류와 복용량 등을 점검했다. 그리고 빈혈을 예방하기 위한 철분제, 통증을 덜기 위한 진통제, 욕창 등 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 등을 처방했다.

◆ 가정에서 펼치는 맞춤식 노인케어

워싱턴병원은 1999년 7월부터 이 같은 ‘하우스 콜 프로그램’을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중증 만성병 노인들에게 실시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DC 동부지역 8개 Zip Code(우편번호)에 속한 4만여명의 노인중 현재 1,100여명에게 가정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디 용 박사는 이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1주에 자신의 근무시간 50시간 가운데 스무시간을 가정방문에 할애하고 있다. 15시간은 병원진료, 나머지 15시간은 병원 행정에 쏟는다."미국노인 인구의 5%가 미국 노인의료비의 절반(52%)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32%의 노인이 노인의료비의 96%를 쓰고 있구요." 64%의 노인은 나머지 4%만 지출한다는 뜻이다.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의료비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 콜 프로그램에 소속된 또 다른 의사인 조지 탈러(George Taler) 박사는 "하우스 콜 프로그램은 이처럼 중증 노인들의 간호 및 요양을 위해 지불됐던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증 노인환자의 경우 1주에 1회 이상 클리닉을 방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MHCP를 이용할 경우 환자는 상태에 따라 주기적 혹은 수시로 의사나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의 주요 입원 원인은 심장병, 천식, 당뇨병의 악화" 라면서 "가정에서 적절한 케어가 사전에 이루어진다면 많은 병원 입원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환자 상태가 나빠져 가정에서 대처가 불가능해질 경우 신속하게 병원으로 후송할 수도 있다.

일일이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기 때문에 가정진료비가 높을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1회 가정진료비는 105달러로 입원비에 비하면 저렴하다. 가정진료비 70회는 1회 입원비 7,000달러에 맞먹는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메디케이드’는 주정부가 부담하므로, 노인 환자의 입원비는 결국 사회가 부담하는 몫이다.

◆ 하우스콜의 양축- 의사와 간호사

하우스 콜 프로그램 운영에서 간호사는 의사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NP(Nurse Practioner)라고 불리는 가정방문 간호사는 1주에 45시간을 가정방문에 쏟는다. 하루 평균 7명의 환자를 방문한다. NP는 기존의 간호사(RN) 자격 취득 후 다시 노인간호를 위한 2년의 별도 교육과정을 이수한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간호사는 노트북을 갖고 다니며, 인터넷을 통해 병원 진료 기록과 현재 환자 상태를 수시로 평가하고, 입력한다. 약이나 주사 처방 등 어느 정도 의사 역할까지도 할 수 있다.

가정진료는 병원에서도 환영받는 의료시스템이다. 홈케어는 시설비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의 검은 가죽 왕진 가방엔 휴대폰, 전자의료차트, 혈압계, 체온계, 옥시미터(혈중산소농도 측정기)와 10여 종류의 의약품이 들어있을 뿐이다. 의사는 자동차도 손수 운전한다.

"일반적으로 만성병 환자의 75%는 병원에서 사망하지요. 하지만 MHCP에선 환자의 75%가 집에서 사망합니다. 따라서 입원으로 인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호스피스까지 제공,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대단합니다."

워싱턴=송영주 의학전문 대기자 yjsong@hk.co.kr

■ 전문가 눈으로 보니/ 편안한 내집에서 진료 노인의료 대안 떠올라

최근 가정진료(MHCP)는 의료진에 의한 가정방문을 통해 환자가 친숙한 환경에서 비용-효과적인 높은 수준의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고령시대의 새로운 의료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MHCP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15년 전 조지 탈러박사는 메릴랜드 대학병원 내 노인의학, 간호, 안과, 사회복지 등 전문의료진을 구성하여 외래 시스템을 시도해 보았으나 중증노인환자의 접근도를 높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노인주택단지 내 노인클리닉을 개설했으나 여전히 중증환자가 이용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요양시설을 기반으로 한 시도도 노인들의 시설기피로 인해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환자에게 다가가는 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에 틈틈이 하던 환자왕진을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워싱턴대학병원에 제의한 결과 이를 병원측에서 수락했다. 처음에는 수입 감소를 이유로 반대하던 일부 행정담당자와 환자가 ‘찾아오는’ 병원중심의 의료에 익숙해 있던 동료 의사들조차 가정진료 환자들이 병원을 이용하게 될 경우 워싱턴대학병원을 찾는 잠재고객이라는 점과 가정진료가 지역사회에 대한 병원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MHCP는 전문의료진에 의한 병원수준에 버금가는 진료, 정기적인 건강관리, 상담 및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통해 시설(병원, 너싱홈)과 응급실의 이용률 감소와 재원일수 감소 등의 효과를 보였다. 진료가 가정에서 이루어지므로 시설공간 등의 경상비가 적게 드는 것도 큰 장점이다. MHCP과 같은 가정진료 프로그램은 워싱턴 DC와 뉴욕시 등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가정진료는 현대의료의 표상인 병원중심, 공급자중심의 각박한 시설서비스로부터 환자중심의 편안한 재가서비스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다학제간 전문팀에 의한 통합적이고 비용-효과적인 양질의 케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노인의료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윤환 아주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남상요 유한대 의무행정과 교수와 특별취재팀을 구성했다. 이윤환 교수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에서 노인보건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보건복지부 노인요양제도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이윤환 아주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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