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60년전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날이다. 또 9일은 유럽연합(EU)의 모태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E)가 창설 55주년을 맞는 날이다.
전후 독일인들이 보여준 과거 청산 노력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이 패전 후 불과 5년만에 피해 당사국인 프랑스와 손잡고 유럽 통합이라는 거대한 꿈을 담은 ECSE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다.
이런 독일과 일본은 그동안 과거사 청산문제에 있어서 명(明)과 암(暗)처럼 대비돼 왔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독일을 본받으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부터 ‘독·일 비교론’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에 대한 일본 지도 세력들의 대응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국제 회의에서, 또한 신문과 방송을 통해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독·일 차별론’이다. "일본을 홀로코스트 만행의 나치 독일과 동일시한다"는 데에 대한 불쾌감과 "독일식 과거 청산은 기대하지도 말라" 는 전략적 메시지가 뒤엉켜 있다.
일본은 전후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모범국가로 재생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 크게 공헌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국가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분명히 실패했다. 새롭게 일본의 대응 논리처럼 떠오르고 있는 ‘독·일 차별론’도 그렇다. 주장하는 바는 알겠지만 침략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의 양식을 의심케 한다.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난징(南京)대학살과 최악의 식민지 지배 행태를 부인하고 싶은 일본의 속내가 엿보이기도 한다. 설사 주장이 옳더라도 그것이 ‘독일식 반성’을 드러내놓고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한층 더 보수·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의 지도 세력들은 역사와 관련된 주변 피해국들과의 논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숲보다는 나무만을 보는 논쟁을 촉발시킴으로써 진짜 누가 옳은 지 조차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독·일 차별론’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고 싶다.
패전 후 60년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잘못된 과거사 문제로 이웃 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일본은 다시 숲을 보는 지혜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일본에 가장 결여돼 있는 것은 인류 보편의 역사 흐름에 대한 존경심과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신뢰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일본은 독일과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