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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구상 시인 오늘 1주기/ 추모집 ‘홀로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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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구상 시인 오늘 1주기/ 추모집 ‘홀로와…’ 나와

입력
200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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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고인이 숨지기 1년 전쯤 당신의 유언이라며

손녀에게 남긴 시.

큰 시인 구상(具常·본명 常浚 1919~2004)이 떠난 지 오늘(11일)로 꼭 1년이다. 그는 지난해 이 날 새벽, 오랜 투병으로 쇠한 기력을 모아 한 점 허공을, 황홀한 듯 오래 응시했다고 한다. 그를 임종했던 사위 김의규(성공회대 교수)씨는 뒤늦게 묻는다. "그날 보신 황홀한 그 정경이 무엇이던가요?"

구상문학기념사업회가 각계 인사 102명에게서 글을 받아 추모집 ‘홀로와 더불어’(나무와 숲 발행)를 냈다. 고인에게 알게 모르게 진 빚을 가슴에만 담아두자니 무거워 글로나마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니 책은 그 빚을 미처 못 갚았거나 갚을 염조차 내지 못하고 고인을 보내야 했던 이들의 늦은 탄식이다. 물론, 시로 삶으로 아낌없이 남김없이 베풀다 간 고인으로서야 예의 그 나지막한 음성으로 ‘내가 언제 빚 줬나?’ 하겠지만.

임헌영(문학평론가)씨는 1974년 ‘문인 간첩단’사건 당시의 ‘빚’을 썼다. 그를 포함한 다섯 문인이 유신정권의 국가보안법 올가미에 어처구니없이 옭혀 재판을 받던 때, 고인의 증언은 참으로 간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빠서" 증언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역시 그는 독재자의 친구로 진리와 정의를 외면한 나약한 한 이기적인 시인이구나’ 치부하던 터에, 재판정에 고인이 나타나 피고의 무죄를 거침없이 증언한다. 미리 참석하겠다고 하면 수사기관의 감시와 압력 때문에 법정에 못 갈지 몰라 거짓 소문을 냈던 것이다. 임씨는 "이 정도는 되어야 존경할 만한 문단의 어른이 아닌가"라고 썼다.

고인은 친구인 박정희 전대통령을 ‘박첨지’라 불렀고, 그의 ‘높은 자리’ 제안들을 번번이 거부했다. 그래도 문학을 만나는 자리라면 그 ‘높은 자리’를 기어코 혼자 힘으로 올랐던 분이었다고, 김동호(성균관대 명예교수)씨는 회고한다. 내달로 300회를 맞는 ‘공간시낭송회’를 고인은 무척 아꼈는데, 그 행사장이 3층이었다고 한다. 40대에 이미 한쪽 폐를 잃은 고인은 가쁜 숨을 들키기 싫어 늘 맨 나중에 홀로 계단을 올랐고, 누구의 부축도 마다했다. 정연희(한국소설가협회장)씨는 "(신간이 나와 선생께 보내드리면) 일일이 ‘책 잘 받았음’을 육필로 써서 직접 편지를 부치시는 통에, 나중에는 오히려 그 분을 아끼는 마음에 아예 책을 보내드리지 않게 만드신 분이었다"고 적었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더라도 계산은 늘 당신 몫으로 알았고, 화가 이중섭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려 그의 오늘을 있게 했고, 자신이 소장했던 이중섭의 그림 판 돈 수억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장애우문예지 기금으로 소문 없이 쾌척한 일 등은 오히려 사소하다. 걸레스님 중광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모두가 그를 멀리하라고 말할 때 "이미 저는 중광이라는 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기다릴 겁니다. 누가 그에게 돌팔매질을 해도 나는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고 했던 이도 그였다고 박삼중 스님은 회고한다.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출구 앞에 있다는, ‘가장 사나운 짐승’ 팻말을 단 커다란 거울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고, 혀로 가장 큰 죄를 짓는 세 부류의 인간으로 성직자, 정치가와 함께 선생 칭호를 듣는 이들이라며 언행일치의 중함을 실천했던 큰 스승을 두고 제자 박수진 시인은 이런 말을 적었다. "내 공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실패는 선생님을 닮지 못한 것이다." 가는 날까지 그의 병상 머리맡에는, 혹 기도 중에 잊지 않기 위해,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이의 이름이 적힌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인이 응시한 마지막 정경이 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오늘’)던 시인의 그 황홀한 시선을 부끄럽지않게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사업회측은 12일 시인이 중절모 쓰고 낚싯대 드리우던 경북 왜관의 낙동강가 구상문학관에서 1주기 추모행사를, 20일에는 서울 YWCA에서 ‘구상의 생애와 사상’ 발표회를 갖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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