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따뜻한 바람이 불 때쯤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뉴스는 개나리 진달래를 보여주며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노래한다. 그러다가 슬슬 더워지면, 텔레비전은 바다와 산에 가득 찬 사람들을 비춰준다. "벌써 피서철이 왔습니다"로 시작해서 "마지막 여름 주말을 즐깁니다"까지 주말마다 끈질기게 여름을 그려낸다. 한두 해 일이 아니다. 헬기를 동원해서 붉게 물든 산과 스키장을 지겹게 보여주는 가을과 겨울의 모습도 십 수 년 반복되는 일이다. 연말연시면 매일 ‘불우한 이웃들’과 ‘온정의 손길들’로 뉴스 한두 꼭지쯤 채우리라는 예상이 빗나간 적은 없다.
텔레비전이 철마다 버릇처럼 다루는 소재는 또 있다. 5월마다 반복되는 ‘가족’ 이야기이다. 재롱, 동심, 꿈과 희망, 효도 같은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파 3사의 저녁뉴스는 약속이나 한 듯 가정관련 주제로 ‘연속기획’을 만들어 방영했다. 장애인 부부, 보육시설 문제, 노령화 사회, 저출산 문제, 중년 남성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기획 보도 외에도, 어린이 안전, 입양, 독거노인, 청소년 가출 등이 지난 열흘간 방송사당 하루 평균 두세 꼭지씩 다루어졌다. 가정의 달 연례행사가 뉴스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많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어린이, 노인, 그리고 가족을 다루었다. 주로 ‘어린이날이 딴 세상 같은’ 어린이들과 ‘어버이날이 더 서러운’ 노인들이 주인공들이다.
5월이면 어김없이 가족을 챙기는 텔레비전을 흉볼 이유는 없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외된 이들에게 눈길 한번 더 주자는 데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독거노인 한 명을 30초 정도 슬쩍 스케치한 후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수준으로 마무리하는 이 대책 없는 타성은 언제나 벗어버릴지. ‘가족’과 ‘가족애’의 신성함은 감히 의심할 수 없는 가치로 남겨둔 채 이로부터 멀어져 가는 세태를 한탄하는 보도는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하는지. 향수에 젖어 그리워하는 전통적 가족상의 한 구석에는 가부장적 폐해도 있고 일하는 여성에 대한 압력도 있다. 능력보다 인연과 지연을 따지는 불합리한 사회상도 작게나마 한 자리 차지한다. 250만이 넘었다는 일인 가구를 가족해체로 단정 짓는 성급함 역시 이 ‘묻지마 신성함’의 무의식적 결과이다. 가족애를 부추기는 뉴스 꼭지 열 개 사이에 가족 이데올로기를 깊이 있게 따져보는 뉴스 하나쯤이 끼어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을까?
‘가족’은 자기완결성을 갖는 개념이 아니다. 이 단어 안에는 복잡다단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노인복지 문제나 사교육비 문제까지도 함께 다룬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좁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경쟁 지향의 문화, 아동 중심의 소비문화, 국제적 수준의 아동 노동자나 기아, 학대의 문제, 그리고 기술 발달까지도 가족 개념 바로 옆에서 꿈틀거리는 문제들이다. 작년 재작년과 똑같은 내용 대신, 이 문제들을 엮는 통찰력 있는 기획보도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을 다룬 KBS와 SBS의 뉴스는 비교적 시각을 넓힌 보도였다. 가난의 악순환을 짚은 지난 주 MBC의 ‘PD수첩’은 ‘가족’에 대해 시사다큐멘터리다운 분석의 칼을 들이댔다. 보육시설 확대야말로 가정의 ‘위기’를 푸는 첩경이라는 몇몇 기자들의 지적도 "관심과 애정이 절실합니다" 류의 안일한 호소보다 훨씬 힘이 있어 보였다.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셈이다.
곧 다가올 여름, 텔레비전은 피서 소식들을 또 어떻게 전할지 궁금해진다. ‘발 디딜 틈 없는 모래사장’과 ‘그래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주말이 돌아올 때마다 봐야 하는 괴로움이 다시 반복되지는 않기를.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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