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평 아파트의 행복
지금 주공이 지은 13평짜리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구로동 지하골방을 시작으로 5년 동안 일곱 번 이사를 했다. 그렇게 살면서 집사람에게 제일로 미안했던 것은 부부동반으로 친구네 집들이 갔을 때다. 유명 건설업체가 지은 번듯하고 세련된 아파트에, 없는 것 없이 꾸며놓은 집안살림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아내. 그 어색했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친구들은 부모 잘 만나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위치에 있다. 이재에도 밝아 만날 때마다 주제는 재테크에 관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루 밥 세 끼 겨우 챙기면서 월셋방에 사는 나는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사실 제지공장 3교대를 하는 내게 재테크는 엄두도 못 낼 일이긴 하다.
우리집의 가보인 장롱은 20년 전 집사람이 결혼할 때 가져온 혼수품이다. 부엌에서 쓰는 그릇들은 물론이고 작년까지 쓰다 버린 헤어드라이어와 지금도 따스한 밥을 만들어주는 전기밥통도 아내의 혼수품이다. 그 낡은 가재도구들이 골동품이 아닌 생활용품으로 쓰이는 광경을 보면 남들은 입이 벌어진다.
둘째누이네 집에 계시던 어머니를 얼마 전 13평 짜리 우리 아파트로 모셔왔다. 아내도 아이도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맞이했다. 집은 좁지만 어머니까지 계시니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욕심없이 살아온 내 나름의 간소한 삶이 나를 배부르게 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나친 포만감으로 불편한 적도 없다. 그러니 나는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세상사람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행복을 가진 사람이다. 더 욕심이 있다면 우리 일곱 형제를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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