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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봄바람 난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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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봄바람 난 아내에게

입력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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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화사한 봄날 이웃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했던 우리 가정에서 아내가 봄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는 암을 무서워하지 말고 보통 생활인처럼 살자. 단지 앞으로 당신은 좀 불편해질 뿐이고 나는 좀 부지런해질 뿐이다. 당신은 나 외에 암이란 애인이 생겼으니 듬뿍 사랑하지 말고 2년만 잘 사귀다가 버리고 나한테 오고, 애인이 힘들게 굴면 나를 생각하면서 잘 달래주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지난날에도 당신에게 의지했는데 아프니까 당신이 얼마나 큰 기둥인가를 새삼 느낀다"며 "한 달 전 나에겐 왜 고민이 없을까?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세상은 참 공평하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땐 무척 아플 때이니 혼자 있게 놓아두라"고 주문했다. 아내는 명랑하게 이야기하다가도 가끔씩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치는지 남 몰래 소리없이 울었다.

나도 가끔은 아내의 건강을 체크하지 못했다는 후회로 괴로웠지만 "우리 이전 일은 절대 이야기하지 말고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자"고 약속했다. 암에 걸린 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머리가 빠지면 제일 멋있는 가발을 써 보고, 음식이 안 내키면 제일 맛있는 산해진미를 먹어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제일 많이 사랑해보면서 아프기 전보다 오히려 멋있고 즐겁게 살자고 약속했다. 아내는 "한 달만 아파 공주처럼 생활 하다가 그 이후엔 당신을 왕자처럼 모시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변의 도움 속에서 약속을 지키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병 간호를 위해 2년간의 계획을 세웠고 아내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매일 운동장을 도는 등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더럽고 자존심 상하고 궂은 일이라도 아내를 위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하였다. 아내는 컵 하나 들 힘이 없어도 추한 모습을 남편 외의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딸들에게 들킬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부모가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딸도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싱크대 창문에 놓여 있는 풍노초는 아내처럼 가냘프게 흐느적거리다가도 아침이면 활기차게 예쁜 꽃을 피웠다. 희비가 교차하는 수많은 위기가 오면 올수록 현혹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실천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여보,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약속한 2년이 다가왔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투병 생활 동안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암 선고를 받는 순간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절망감에 빠지고, 가족들도 "내가 무엇을 잘못해 가족이 암에 걸렸나!"하는 자괴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암은 많은 병 중에 하나일 뿐 특별한 병도, 불치의 병도 아닙니다. 지금도 투병 생활을 하는 많은 환자나 가족들이 용기를 갖고 치료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암과 친하게 지내다가 못난 남편 품으로 다시 돌아온 아내에게 더욱 사랑한다는 말을, 아내를 위해 자신의 생활까지 희생하신 형수님과 처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그리고 우리들에게 많은 힘을 준 가족, 친지, 선후배, 직장 동료, 세브란스병원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윤여엽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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