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자는 한나라당의 제안이 논란을 불렀다. 정식 법안은 나오지 않았으나 제안만으로 시끄러웠다. 심각한 수준인 성폭력 범죄를 막으려면 강경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인권침해 우려가 크다는 반론이 맞부딪쳤다. 그러나 그쯤에서 논의가 멈췄다. 우리사회가 늘 그렇듯이 문제를 보는 안목과 주장을 펴는 논법이 지나치게 단순한 탓이다.
한나라당의 제안은 상습 성폭력 전과자에게 위치 확인용 전자 팔찌를 채우면 재범을 막고 범인을 잡는 데 아주 쓸모 있다는 것이다. 이걸 요량 없이 "팔찌 찬 사람의 심장박동까지 감지, 성행위를 하는 순간 포착한다"고 떠벌린 모양이다. 그러자 첨단 좋아하고 선정적인 언론은 물색없이 떠들었고, 인권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이들은 무슨 소리냐고 흥분했다.
이런 논란은 핵심을 빗나갔다. 한나라당 식으로 전자 팔찌를 채우려면 애초 건강보조기구의 효험과 해악을 다투듯이 작동 원리와 성능 따위에 매달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성범죄 전과자를 감시하는 제도가 사회적 법률적으로 절실하고 타당한가를 먼저 따져야 옳다. 그런 의론은 소홀히 한 채 감시수단의 하나인 전자 팔찌의 선악을 심판 하듯이 떠든 것은 엉뚱하다.
전자 팔찌 등을 통한 전자감시는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가 도입했고, 우리도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원래 전자감시는 가석방 대상자나 집행유예 형을 받은 범죄자를 가택구금이나 일정한 통금상태에 두고 보호 관찰하는 이른바 사회내 처우에 이용한다. 교도소보다 나은 환경에서 범죄성 교정과 재범 방지를 꾀하는 제도다. 미국처럼 교도소가 넘치고 비용도 많이 드는 문제를 완화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제도의 핵심은 공공에 위험성이 낮은 범죄자의 형벌 대체용이란 점이다. 영국에서는 4년 미만 형을 절반이상 복역한 범죄자가 야간 가택구금과 전자감시에 동의하면 가석방한다. 죄질이 더 가벼운 범죄자는 법원이 직권으로 하루 2~12시간 통금과 전자감시를 명령한다. 성폭력 범죄는 대상이 아니다.
한나라당 제안은 형벌에 추가해 사회 속에서 전자감시를 하자는 점이 전혀 다르다. 이런 형벌보충적 조치는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와 치료감호 등 보안처분이 있다. 그러나 사회방어가 목적인 보안처분은 시설에 가두는 것이다. 따라서 전과자를 전자감시만 하는 것은 독창적이지만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재범 위험이 아주 높은 상습 성범죄자는 원격감시가 아니라 보호감호나 치료감호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자 팔찌 찬성론이 예로 드는 미국에서 성 도착증 등 개선 여지가 없는 성범죄자를 형기가 끝난 뒤 전자 팔찌 등으로 집중감시하면서 성욕감퇴 투약을 하는 것은 치료감호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전자 팔찌 감시로는 범죄 억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감호처분이 필요한 정도의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은 전과자에게 막연한 예방효과를 기대하고 전자 팔찌를 채우는 것은 과잉제재가 문제된다. 한나라당도 이 때문에 자유제한 없는 ‘위치확인’을 내세운 듯하다. 그러나 심리적 억제를 넘는 범죄예방 효과는 한층 의심된다. 언뜻 예방보다 범인 검거에 도움될 것 같고, 따라서 법률적 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나라당의 충정은 이해하더라도 입법 제안은 여러모로 어설프다. 이런 제안을 내놓은 뒤 방송 토론에 출연한 국회의원이 법률 문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반대 토론자들도 설익은 제안을 악의적으로 비웃기만 하거나 강파른 인권 시비에 매달려 논의의 핵심을 벗어났다. 찬성 쪽 전문가들이 법률적 측면을 짚었으나 외국 사례를 편한 대로 왜곡하는 병폐를 드러냈다.
결국 한나라당의 구체적 입법제안을 기다려 처음부터 다시 논의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진정으로 성범죄 대책을 고민한다면 정당이든 개인이든 잡다한 정치적 고려와 한국적 논법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