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청각 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장애인이 발을 헛디뎌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자 승강장에 있던 시민들이 합심해 들어오던 전동차를 수신호로 세우고, 직접 선로로 뛰어 내려가 생명을 구했다. 장애인은 무사히 구조돼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의 하행(종각역 쪽) 승강장을 혼자 걷던 장애인 김모(43)씨가 발을 헛디디며 선로 위에 떨어진 것은 8일 오후 8시14분께. 순간 종로5가역을 출발한 K811호 전동차가 종로3가역 구내로 막 진입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1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진입하는 전동차를 향해 몰려가면서 기관사에게 ‘뒤로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영문을 모른 채 승강장을 향해 들어오던 전동차 기관사는 100여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자신의 전동차 앞으로 몰려오며 수신호를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급히 전동차를 세웠다. 전동차의 앞 부분이 역내로 30c가량 진입한 후였다. 다행히 김씨가 추락한 곳은 열차가 진입하는 승강장 시작점으로부터 80여c 떨어진 곳. 열차가 김씨를 50여c 앞두고 간신히 멈춰서자 4명의 시민이 선로로 앞다투어 뛰어내려 김씨를 끌어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1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김씨는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채 지하철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고, 열차는 사고 발생 3분 만인 오후 8시17분 다시 출발했다. 선로로 뛰어내려 김씨를 구한 시민 4명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뒤이어 들어온 전동차를 타고 훌쩍 현장을 떠나 현재까지 신원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기관사 김희훈(40)씨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이상한 손짓을 하길래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비상제동을 했다"며 "긴박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쓴 시민들의 용기에 놀랐고 시민들 덕분에 사고를 모면하게 돼 너무 다행스럽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너편 승강장에서 사고현장을 지켜본 공익요원 이승우(24)씨는 "역무실에 상황보고를 하고 사고현장으로 건너갔을 때는 김씨가 이미 시민들에 의해 구조된 뒤였다"며 "100여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장애인을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소리치며 수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몹시나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진복(62) 종로3가역장도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는데 주변 승객들이 신속한 조치를 취해 인명사고를 막았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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