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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9) 미술사학자 최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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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9) 미술사학자 최완수

입력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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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평생 꽃을 가꾸며 살고 있다. 꽃을 가꾼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과 거름을 때맞춰 적당히 공급해야 하고 햇빛과 바람을 조절해 주어야 하며 병충해나 동물 및 인위적인 손상을 막아 주어야 한다. 어디 그 뿐이랴. 혹심한 추위나 더위는 물론 강풍과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에서도 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간 부지런해야 하지 않는데 이 정도의 부지런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좋은 종자나 묘목을 구하기 위해 꽃시장과 묘목장을 누벼야 하고, 어디에 무슨 희귀한 꽃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찾아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그 종자와 묘목을 분양받아 오며 비록 여행 중이라도 좋은 꽃을 보면 반드시 그 종묘를 얻어 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꽃 심을 공간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제 땅이거나 남의 땅이거나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꽃을 심고 가꾸고 자신과 인연이 닿는 곳이면 계산 없이 꽃나무 묘목을 부지런히 심어 대는 무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있고 나서도 매일 조석으로 보살피는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초목은 건강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꽃피는 봄철이 되면 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꽃을 찾아 무리 지어 나들이에 나서고 각종 잔치나 모임에 꽃장식이 빠지는 경우가 없다. 관청과 회사, 학교, 사찰, 교회 등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는 공공건물의 정원도 꽃나무로 꾸며지고 아파트나 개인 주택의 앞 뒤뜰에도 꽃나무는 가꿔진다. 그러니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는 항상 꽃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이나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서 묘사하고 있는 극락세계도 바로 이렇게 각종 꽃이 항상 피어 있는 곳이다. 극락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불경에서 얘기하고 있는 각종 불국토가 모두 각 가지 꽃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이것은 불교경전에만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어떤 종교든지 그 이상세계를 설정하면서 꽃을 배제한 경우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름답게 피어난 현란한 꽃 그 자체일 뿐 그 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던 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다 꽃 가꾸는 일에 관심이 없고 꽃만 즐기려 한다면 결국 아름다운 꽃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꽃 가꾸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 늘 피어 있게 하려면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누군가는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그 어려운 꽃 가꾸기를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각양각색의 화려한 꽃들을 피워내고 이를 즐기며 남들이 그 꽃을 보고 좋아하면 더욱더 보람을 느끼며 산다. 천품으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공부도 이와 같다. 공부가 좋아야 평생 공부를 할 수 있다. 세상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공부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이를 합리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천재라도 자기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성인(聖人)은 태어나면서 이를(세상이치) 알고, 현인(賢人)은 배워서 이를 안다.(聖人生而知之, 賢人學而知之)"고 한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성인이란 인류 역사상 절대가치 기준을 마련한 몇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니 태어나면서 세상이치를 스스로 터득했다 하겠지만 각 시대 각 지역에서 대중의 사표(師表)가 되었던 현인들은 모두 배워서 세상이치를 터득했다는 내용이다. 성인인들 어찌 배워서 터득한 것이 없겠는가. 다만 스스로 터득한 것이 더 많아서 이후 다른 사람들이 배워 갈 것을 더 많이 만들어 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부에는 이렇게 스스로 터득하는 것과 남의 경험 즉 남의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터득하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인류문화의 진행 과정에서 무수한 천재들이 나와 많은 지식을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후대로 내려올수록 배울게 많아졌다. 그래서 공부의 무게는 배운다는 의미 쪽으로 기울게 되고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남의 경험 즉 남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로 자족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남의 지식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와 현재의 허다한 지식들을 섭렵한다는 것이 여간한 총기와 근면이 아니고서는 이루어 내기 힘든 일이고, 또 그 시비를 가려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더욱 난감한 일이다. 여기서 공부는 한갓 헛된 노력으로 세월만 낭비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인류문화를 진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한다.

지식 중에 과거의 지식은 오랜 세월이 그 시비를 검증했기 때문에 배워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만 남았다. 그것이 고전(古典)이다. 그러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공부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식은 그 절실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시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거울 속에 비춰봐야 한다.

과거 왕조시대에 제왕(帝王)을 가르치는 학문인 성학(聖學) 즉 제왕학(帝王學)의 교과가 철저히 검증된 고전인 경전(經典)과 역사를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왕은 수직적인 지식의 잣대만 가지고 있으면 문무백관들이 저마다 자랑하고 있는 수평적 지식을 경사의 거울에 비춰 재단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왕은 한 나라의 기준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은 전문가에게 듣고 그 판단기준만 공정하게 제시하면 된다. 제왕의 전문 지식은 오히려 편향된 가치관으로 인해 기준치의 역할을 방해할 소지가 클 뿐이다.

우리민족처럼 공부 좋아하는 민족은 드물다. 일찍이 당(唐) 태종(太宗·597~649)이 진평왕(眞平王) 48년(626) 8월에 즉위하고 나서 곧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에 화해를 종용하는 사신을 보내는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정통한 대학자 주자사(朱子奢·?~641)를 선발하여 3국을 두루 돌며 설득하고 돌아오게 한다.

그 때 당 태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못 학문을 중시하니 대국사신의 체면을 생각해 예폐(禮幣)에 이끌려 강설(講說)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간곡히 타일러 보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을 잘했던지 강설하지 않고 돌아오면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시켜주겠다는 칙명도 어기고 ‘춘추좌씨전’을 강의하고 돌아와 태종을 실망시켰다 한다.

이후 원효(元曉·617~686), 의상(義相·625~702)과 같은 세계적인 불교학자가 나왔고, 고려 광종 9년(958) 과거제도를 실시하면서부터는 시험공부가 일상화 되어 그 전통이 천년 넘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사회의 주도층으로 진입하려면 이 시험의 관문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모든 사람이 꽃이 좋다고 꽃으로 몰려드는 현상과 같다.

그러나 그 사이 충선왕(忠宣王·1275~1325)은 만권당(萬卷堂)을 설치하고 원나라 학예계의 제일인자였던 송설(松雪) 조맹부(趙孟·1254~1322)를 초빙하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 등 우리 자제들을 직접 가르치게 했다. 그 결과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이 전해져 이를 국시(國是)로 조선왕조가 개국하니 조선왕조에서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선비가 아니면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없었다.

이후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나와 주자성리학을 조선성리학으로 심화 발전시키자 선비들의 성리학 공부는 더욱 심오한 경지에 이르러 자존 의식을 가지고 세상이치를 터득하려는 공부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진경문화와 같은 수준 높은 고유문화를 이루어 내었다.

나는 공부를 좋아한다. 꽃도 우리 꽃을 더 좋아하듯이 공부도 우리 공부를 더 좋아하는데 꽃 가꾸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궁금해서 못 견디고 모든 일이 이치에 맞아야 이를 수긍하는 성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왜곡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도 그저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이다. 반드시 원인을 규명하고 이유를 밝혀 시비를 가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량없는 희열과 쾌감을 맛보게 된다. 꽃 가꾸는 일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그림과 글씨, 불상조각 등 우리 미술사를 주전공으로 삼고 있으니 사료가 그대로 꽃이다.

문화를 식물에 비유한다면 이념은 뿌리이고, 정치·경제는 가지와 잎이며, 예술은 꽃이다. 그 꽃의 역사를 추적하여 잎과 가지 뿌리를 헤아릴 수 있는 학문이니 어찌 공부가 즐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술사는 공부양이 가장 많은 학문 분야다. 역사 공부가 정치, 경제, 사상사를 넘나들 만큼 최상위 수준에 이르러야 하고 감식안이 또 더 보태져야 하며 시문(詩文)과 불교경전 및 유교경전에 대한 기초 소양이 있어야 한다. 공부를 좋아하고 부지런하다면 평생 못 갖출 일도 아니다.

● 최완수씨는

최완수씨는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다. 서산 마애불이 가까이 있는 충남 예산에서 1942년에 태어났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오고 국립박물관에 학예직으로 근무하다가 1966년 최순우씨의 권유로 국내 최고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40년간 철저하게 자료와 문헌에 바탕한 연구로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도제식 연구로 숱한 미술사학자들을 키웠다. 그는 특히 진경산수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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