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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현대판 부관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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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현대판 부관참시

입력
2005.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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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년 전에 이 칼럼을 통해 미국 제헌 헌법에 있었던 기발한 법 조항을 소개한 바 있다.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될 이 조항은 노예는 5분의3인간이라는 기상천외한 내용을 갖고 있는데 이는 헌법을 만들고 건국을 할 당시 북부와 남부가 대립해 타협을 한 결과이다. 당시 북부와 남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새 국가형태를 중앙정부가 어느 정도 힘을 가진 연방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정부가 별 힘이 없는 국가연합으로 할 것인가 등 여러 쟁점에서 모두 타협을 봤다. 그러나 노예문제로 헌법제정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투표권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질 것이냐는 문제와 관련해, 남부는 노예도 인간이니만큼 노예주인이 노예수만큼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북부는 노예는 인간이 아니므로 투표권을 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문제로 헌법제정과 건국이 물건너갈 위기에 처하자 양쪽의 대표들은 역사적인 대타협을 통해 노예는 5분의3인간이라는 조항을 만들어 낸 것이다.

흔히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타협의 정신을 지목한다. 크게 봐서는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타협이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 하는 것은 바로 이 5분의3 조항이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바로 이번에 여야간의 타협에 의해 통과된 과거사법이다. 이 법은 잘 알려져 있듯이 원래 열린우리당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 의해 그동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들을 바로잡기 위해 추진한 개혁법안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면서 조사대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거나 적대적인 세력 또는 동조세력에 의한 테러와 인권유린 등의 사건"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과의 연대에 의한 단독처리가 아닌 다음에는 과거사법 자체를 폐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의 타협에 의해 ‘동조세력’은 제외하는 선에서 한나라당의 안을 수용하는 절충안을 만들어 이 안을 여야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이 법안의 처리과정은 여야가 그간의 지겨운 대립의 정치를 넘어서 상생과 타협의 정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5분의3 조항과 마찬가지로 타협의 결과라는 것이 이처럼 엉뚱한 것이라면 그것은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만이 아니라 소위 대한민국에 적대적 세력에 의한 인권침해도 조사하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형평성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5분의3 조항처럼 말이 되지 않는 상식이하의 법이다. 대한민국에 적대적 세력에 의한 인권침해 등 범죄행위란 결국 소위 좌파와 역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반정부 민주화운동에 의한 범죄행위를 말하는 바,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 같은 세력과 운동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해온 역사이거늘 이제 와서 또 무슨 조사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통과된 법은 이미 군사독재 등에 의해 처벌을 받은 민주화운동을 다시 한번 조사해서 처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왕조시절의 처벌 중 가장 심한 벌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파내어 다시 위해를 가하는 부관참시였다.

그런데 이번 법은 사실상 현대판 부관참시에 다름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맛이 갔다고는 하지만 지도부가 이같은 법안을 상생의 정치라는 이름아래 합의해 준 것, 그리고 지도부가 합의한 이 안을 의원총회에서 투표도 아니고 박수로 추인해 준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의원총회에서는 이 안을 별 군소리 없이 추인을 해주고는 정작 본회의투표에서는 상임중앙의원의 다수가 반대 내지 기권하는 등 열린우리당의 다수의원들이 여론을 의식한 얄팍한 이중적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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