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확실한 차기총리 입지 굳혀 ‘여유’
‘10번지에서 11번지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권력이 고든 브라운(53·사진 오른쪽) 재무장관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 영국 더 타임스의 기사 내용이다. 10번지는 총리 공관을 나타내는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 11번지는 그 옆 재무장관 공관을 뜻한다.
7일 영국 언론들은 노동당이 영국 정치사상 3기 연속집권이란 신화를 일구자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블레어 총리가 아닌 브라운 장관이라는 점을 일제히 부각했다. 주요 신문들은 브라운 장관의 겸손한 자세와 그의 향후 진로에 대한 전망기사로 지면을 가득 메웠을 정도다.
‘이라크는 잊어라. 문제는 경제다’라는 노동당 선거운동 구호가 말해주듯 브라운 장관은 이라크 전에 발목 잡힌 블레어 총리와 노동당을 영국 역사상 최장기 경제 성장세란 성적표로 구해낸 일등공신이다. 지도력과 신뢰성 위기에 사로잡힌 블레어 총리가 레임덕에 빠질 경우 브라운 장관에게 총리직을 조기 이양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국민들에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패트릭 던레비 런던 정치경제대 교수는 "브라운 장관에 대한 노동당 내 대우는 이미 총리 수준"이라며 "내년에 있을 유로화 도입 찬반 국민투표에서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블레어 임기는 1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레어 총리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경제성장은 1997년 블레어 정권 출발부터 재무장관을 맡아온 브라운 장관의 업적이다.
그러나 브라운 장관의 경제관은 시장경쟁을 도입해 ‘제3의 길’을 제시했던 블레어와는 많이 다르다. 분배라는 전통 좌파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있는 그는 노조 및 시민운동 세력과 밀착해 있다. 고교시절 망막 손상을 입어 왼쪽 눈을 잃었지만 에딘버러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20대 초반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 토니 블레어 총리/ 이라크 철군 국내 압력에 ‘고민’
7일 출범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3기 노동당 정부는 친미 성향을 보여온 대외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하원선거에서 노동당은 645개 선거구에서 355석을 얻어 보수당(197석) 자유민주당(62석) 등 야당을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노동당 득표율은 2001년 총선과 비교하면 41%에서 35.2%로 크게 떨어져 역대 집권당 중 최저 수준이었다.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 매김한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컸다는 것이다.
때문에 3기 노동당 정부가 직면한 최우선 과제로는 이라크전을 둘러싼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타개책 마련이 꼽히고 있다. 7일 개각에서 블레어가 이라크전과 관련해 비판 받아온 제프 훈 국방장관을 경질한 것도 변화의 조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분석가들은 "블레어가 미국과 독자적인 행보를 계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마이클 클라크 런던 킹스칼리지 국제정책연구소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식의 군사적 행동에 영국이 참전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영국 정부의 해외 참전은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라크 철군 문제도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미국도 12월 철군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블레어도 노동당 내 정통 좌파나 국민들의 철군 요구에 대비해야 한다.
사회주의도 시장만능도 아닌 제3의 길을 표방한 탈이념 실용주의 노선에 수정이 가해질지도 관심이다. 블레어 총리는 의료보장·교육 등의 공공서비스 개혁, 일자리 창출 등 복지 개혁, 연금 개혁, 이민 시스템 개선 등 국내 현안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분간 국내 문제가 외교 현안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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