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나라당 회식 자리에서 건배할 때 외치는 구호가 바뀌었다. 과거 여당 때는 ‘위하여(與)’, 야당이 된 뒤에는 ‘위하야(野)’였다가 지금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설 아카데미의 신입생 환영식에서도 권불십년은 화두였다.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축사에서 "2007년 대선 때면 우리가 권력을 빼앗긴 지 10년"이라며 "권불십년이라는 세상 순리대로 우리가 권력을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힘센 권력도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 한나라당은 이를 믿고 싶어한다. 김대중 정부의 5년은 조금만 참으면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버텼지만 노무현 정부의 5년까지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길다. 그래서 뭔가 희망을 갖고 싶어하는 심리가 권불십년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낸 듯하다.
한나라당의 이런 기대는 실현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대선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해낸 ‘노무현 신화’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이길 수 있다는 미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당은 이번에 23 곳의 재보선에서 지고도 아직도 대선에서는 이긴다고 장담한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가 오고 DJP 연합을 하고서 겨우 39만표(1.6%)를 이겨서 탄생했고, 노무현 정부는 호남 정권의 영남 후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연합에다 정몽준 후보와 손잡으면서 57만표(2.3%)를 이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거기에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없었던 탄핵 사태로 국민의 격정이 폭발했던 지난 총선의 특수 상황을 우리당은 보편적 현상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한나라당이 권불십년을 외칠 만 하다.
그러나 권불십년의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상대의 실책에 편승하겠다는 기회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한나라당은 권력을 다 쥔 것처럼 행세했다. 하는 재보선마다 이기지,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국민은 한나라당이 좋아서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DJP 정권의 나눠먹기, 각종 게이트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다수 의석을 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한나라당은 집권 비전이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의 대선과 한 번의 총선에서 승리하고서 도취해있는 여당이나, 그런 여당을 경고하기 위해 반대쪽에 표를 준 국민을 자기편이라고 믿는 야당이나 모두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착각이 권불십년에 스며들어 있으니 그런 허망한 구호는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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