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부기관 등이 외환위기를 목전에 둔 1996년까지도 기관 간의 알력과 정치권 눈치보기 때문에 무지개 빛 청사진을 내놓는 등 ‘헛소리’를 남발하며 환란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 당시 고위 경제관료로부터 제기됐다.
8일 환란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낸 강만수(사진) 공적자금관리위원은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통해 개발독재시절부터 외환위기까지 경제정책은 수시로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흔들렸고, 경제관료들은 전문성 부족으로 위기상황에서 우왕좌왕했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은 1994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으나, 당시 경제정책은 물가와 성장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외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졌던 것이 환란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한 해 전인 96년 정부는 성장률 7.5%, 물가 4.5%, 경상적자 60억 달러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큰소리 쳤고, 한은도 이 같은 견해에 맞장구를 쳤는데, 그해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21세기 경제장기구상’은 이런 ‘헛소리의 백미’였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은 97년 3월 재경부 차관을 맡으며 환율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당시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재경부와 한국은행과의 관계가 최악인 가운데 전화로 환율이 900원 넘어가도록 그대로 놔두라고 한은에 요구했으나 한은 간부는 "890원은 마지노선이다. 그 이상은 절대 안된다"고 일축했다는 것이다.
강 위원은 98년 1월 뉴욕 외채협상 당시 협상의 주도권은 우리가 잡은 상황이었음에도 한국 협상단의 미숙함 때문에 큰 손실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과거 멕시코나 브라질에는 국제 채권은행단이 대출원금을 10~30%씩 탕감해 주고 금리도 낮춰줬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조치가 없었다. 자문역으로 동행한 미국 컨설팅사 대표가 "좀더 유리한 내용으로 타결될 수 있었는데도 당황한 한국 대표들이 상황을 잘못 파악해 채권단의 제안을 쉽게 승낙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강 위원은 전했다.
제일은행 매각에 대해서도 전액 감자 후 매각이나 청산 등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나중에 15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 정부가 은행 퇴출에 지나치게 겁을 먹어 무산됐다고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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