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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과거분식, 감리 면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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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과거분식, 감리 면제 안된다

입력
2005.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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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많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기업 회계 정보가 회계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작성되고 공개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총 자산 70억원 이상의 주식회사는 재무제표를 작성해 감사인에 의한 회계 감사를 받도록 하고, 감사인의 감사보고서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감리 및 이에 따른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분식 회계에 대해서는 증권거래법상 사업보고서 허위 기재에 따른 책임, 외감법에 의한 형사 책임, 중요한 사항의 허위 기재시 손해 배상 책임, 그리고 각종 행정적인 제재가 뒤따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부에서 기업의 회계 분식 사실을 밝혀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기업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회계 분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금융감독원이 감리 결과 및 이에 따른 조치 사항을 발표하는 경우에만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원은 2005년과 2006년 재무제표에서 기업이 과거 분식을 수정(해소)하는 경우 해당 부분에 대해 회계 감리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외감법 규정을 개정했다. 개정된 외감 규정으로 인해 사실상 해당 회사 외에는 그 누구도 회계의 분식 여부나 규모에 대해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기업 회계의 정확한 정보에 대한 투자자 등의 알권리를 침해한다. 잘못된 재무제표를 신뢰해 투자한 이들이나 신용을 제공한 주주, 그리고 채권자의 재산권을 침범하는 것이다. 특히 증권거래법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할 수 없게 돼 재판청구권까지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외감법 및 이 법 시행령에는 감리 면제나 제재 조치 감경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외감 규정은 외감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분식 회계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 상위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근거 규정 없이 하위법에서 허용하는 것이어서 위임 입법에 관한 헌법 제75조에 위반된다.

또 분식 회계에 대해 ‘전기 오류 수정’ 방식만이 허용될 경우 시장에서는 2년 뒤 어떤 기업이 분식을 해소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분식된 재무제표를 갖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 외감 규정은 관련 항목 수정 등 전기 오류 수정 방식 외의 방법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분식 해소를 위한 분식, 이른바 역(逆)분식을 허용하는 것으로 또 하나의 회계 기준 위반 행위이다.

이를 허용할 경우 2년 후 분식을 해소한 기업과 해소하지 않은 기업의 구별이 불가능하고, 해소했다고 하더라도 남아 있는 분식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금감위의 과거 분식에 대한 감리 면제 및 제재 감경 방침이 증권집단소송법의 개정 취지에 충실하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증권집단소송법은 증권거래법 위반 행위 등에 대하여 어떻게 소송을 진행할 것인지를 정하고 있는 소송 절차에 관한 법이고, 과거 회계 분식과 관련하여 집단소송 대상에서만 유예한다는 것이므로, 과거 분식 회계에 대한 감리 면제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금융 감독 당국이 분식 회계에 대한 감리를 하지 않으면, 해당 회사 외에는 회계 분식 사실과 규모를 알 수 없다.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있더라도 수사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는 수사를 한 후 불기소 처분을 하거나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된 후 사면하는 것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위반 행위 처벌과 피해 구제를 면제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근거 없이 외감 규정 개정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개정 외감 규정은 투자자 등 이해관계인의 보호와 기업의 건전한 발전 도모라고 하는 외감법의 입법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김영희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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