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필립 제리코 미국 국무부 자문관이 주목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1기 정부에는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은 국무부 협상파와 국무부 밖 강경파간 노선 투쟁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체제가 들어선 이후의 상황은 다르다. 강경파의 장벽을 실감해야 했던 콜린 파월 전 장관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라이스 장관은 명실상부하게 대외정책을 관장하는 실세다. 이는 대북 강경론이든 협상 지속론이든 라이스 장관 스스로가 어느 쪽 의견에 귀를 열어 놓느냐에 따라 정책의 변화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라이스 장관을 움직일 두 핵심 요소로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제리코 자문관을 꼽고 있다. 현재는 힐 차관보의 ‘6자회담 우선론’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 실험을 할 징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동선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제리코의 ‘북한 체제변형론’이 먹힐 여지를 넓히고 있다. 전세계 민주주의 확산의 강력한 신봉자인 제리코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지름길은 북한체제를 민주주의로 변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흐름에 닿아 있다.
더구나 제리코는 라이스 장관의 ‘복심(腹心)’으로 통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러시아 담당 보좌관실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두 사람은 막역한 친구로 지내왔다. 1995년엔 ‘독일통합과 유럽 변형’이라는 공저를 낸 정도로 사상적으로도 결합돼 있다. 라이스 장관은 취임 이후 버지니아대 공공정책 소장을 맡고 있던 제리코를 아예 국무부로 불러 중요 정책에 대한 자문을 받고 있다.
물론 힐 차관보와 제리코 자문관을 대칭적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힐 차관보가 지역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면 제리코는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이념적 측면을 우선하는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적 해결 노력이 한계가 다다를 때 국무부의 무게추는 제리코에게 넘어갈 수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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