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서영채(44)씨는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에 관한 한 그는,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실제로 동네 조기축구단 40여명의 회원 가운데 가장 성실한 축에 들며, 실력과 근성으로 ‘탑 11’에 드는 당당한 주전이다. 지난 주 만난 그는 꽤 고양된 상태였다. "며칠 전 서초구청장배 조기축구대회에서 우리 팀이 2연승으로 결승에 올랐어요. 5년 A매치(공식경기) 전적 ‘무승(無勝)’ 기록을 일거에, 화끈하게 깬 거죠."
축구를 말할 때 그는 민망할 정도로 진지하다. 편파 판정에 항의하다 옐로카드를 받은 대목에서나, 그 경고는 결코 수긍할 수 없다고 말할 때의 결연함은, 그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귀엽기까지 하다. 물론 그는 ‘귀엽다’는 반응, 자신의 진지한 열정이 오롯이 전달되지 못함이 안타깝겠지만, 그것이 노력과 성취의 기쁨을 체험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의 불가피한 괴리임을 이해할 것이다. 그는 사서(四書)에 나온다는 ‘隨時處中(수시처중)’의 논리, 시중(時中)의 자세라는 것이 말이나 입장을 판단함에 있어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고양감은 단순히 승패에 국한된 감정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못 찬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지만 처음 대면했던 조기축구의 세계는 넓고 크더라고 했다. "정교한 트래핑,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강호에 고수가 많더군요." 팀에서 방출 당하고 6개월간 러닝머신으로 몸을 만든 뒤 쭈뼛쭈뼛 다시 찾아간 게 5년 전이다. 이래로, 지금껏 매일 새벽 몸 풀기며 주말 강훈에 빠진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번 시합에서 그는 그렇게 원하던 공격수 포지션을 받아 뛰었다. 그는 말한다. "단 하나의 완벽한 패스, 단 하나의 완벽한 슈팅, 그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바로 한 선배께서 문학을 두고 말한 ‘불멸의 일구(一句)’ 같은 거죠!"
그가 비평집 ‘문학의 윤리’(문학동네 발행)로 ‘제16회 팔봉비평문학상’을 거머쥔 것은, 그에게는 5월의 두 번째 경사인 셈이다.
그에게 ‘문학의 윤리’는 "탈이념의 시대에 문학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 윤리는 "(순서를 뜻하는 윤(倫)의 이치가 아니라 정반대로)정해진 순서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뒤집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욕망의 심연을 투철하게 응시하고자 하는 시선"(책의 서문)에서 비롯된다.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이런 장중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단지 내 편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것, 그것은 충분히 윤리적입니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참과 거짓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장엄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이익과 전통과 가치체계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 주어진 선과 악의 경계에서 단호히 그 경계선에, 자기 자신 편에, 문학 편에 서는 것, 그것은 충분히 윤리적입니다."(‘탈이념의 시대의 문학’)
그는 "복수의 가치가 충돌할 때 그 역설을 감당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리는 단순 이분법의 논리가 싫다"고 말했다. 그게 싫어서 그 이분법의 경계,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고자 했던 것이 지금껏 자신을 긴장시켰음을, 이제야 고마운 마음으로 깨닫는다고도 했다. 승패의 나눔을 떠난 자리에 서서, 박수와 환호에의 욕심을 벗어버린 마음으로, 단 하나의 완벽한 패스를 위해 공을 응시할 때의 긴장이 그와 같을 것이다.
책의 1부에는 ‘탈이념 시대의 문학’ ‘사이렌의 침묵: 문학적 사유와 역설의 힘’ 등 문학과 문학비평 존재양식을 탐구한 글들이, 2부에는 탈이념 시대의 주요 작가와 작품론이 실려있다.
그는 96년 교직에 든 이래 첫 안식년을 ‘즐기는 중’이다. 시내 한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고싶던 책, 봐야 했던 책에 빠져있는 지금이 그는 무척 행복하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서영채 교수는
▦1961년 전남 목포 생
▦1981년 서울대 국문과 입학
1990년 동 대학원 졸업
▦1995~ ‘문학동네’ 편집위원
▦1996년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평론집 ‘소설의 운명’(1995) ‘사랑의 문법: 이광수, 염상섭, 이상’(2004)
제1회 고석규 비평문학상 수상
■ 심사평/ 현장에 밀착 생생함 돋보여
중견 평론가 다섯 분의 평론집이 심사의 뜨거운 대상이 되었다. 뜨겁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갑론을박의 토론이 있었고 심사자들의 의견 대립이 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서영채 씨의 수상으로 견해가 쉽게 모아졌다. 그러나 수상에서 제외된 평론집들도 우리 문학비평계의 다양한 위상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저작들이어서 그 의미가 결코 가볍게 간과될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이 분명히 전달될 필요가 있다.
먼저 한 여성 평론가가 진지한 검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여성 평론가들의 활약은 1990년대 이후 우리 평단의 괄목할 만한 현상 가운데 하나이며 그 성과도 매우 주목되는터여서 심사자들 또한 내심 기대가 컸다. 미구에 훌륭한 여성 평론가의 수상이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
거론된 후보작들 가운데에는 ‘문학평론’이라는 정통적인 문학 장르에서 다소 벗어난, 그러나 우리 문학 작품들과 작가들에 대하여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접근을 행하고 있는 책도 있었다. 그 저자 역시 기성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 바깥에 있는 학자였는데, 참신성만큼 현학성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부각되었다. 비평은 독창 혹은 독자성이 존중되는 분야지만, 어휘의 유통 때문에 독자가 곤혹스러워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확고한 주장으로 어려운 세월 문학적 이념과 자세를 지켜온 한 평론가의 중후한 업적도 심사자들을 뿌듯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론집 전체 내용의 통일성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영채씨의 평론집 ‘문학의 윤리’는 생각이 깊고 비평적 호흡도 길면서 입장도 유연하다는 점이 호감을 샀다. 민족문학론을 야심적으로 다루면서 이와 관련된 문헌 섭렵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오늘의 현장에 밀착해 구체적인 작가·작품론을 펼침으로써 문학평론의 살아있는 힘과 맛을 표현해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 동안 근대 논의를 중심으로 비평적 쟁점을 잘 정리해온 이 비평가의 지속적인 선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柳宗鎬 金允植 金炳翼 金柱演
■ 심사경위/ 김명인·황도경 등 5명 압축 즐거운 토론 끝 저절로 결론
팔봉비평문학상이 16번째 수상자를 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심사원칙은 그 해 3월 말까지 나온 평론집을 심사대상으로 삼는다는 것과, 학술적 연구서의 성격을 띤 평론집보다 현장비평 중심의 평론집에 호감을 가진다는 것, 또 40대 이상의 비평가가 낸 평론집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황종연 씨의 수상을 예외로 본다면, 첫 번째 평론집은 가급적 배제한다는 것까지 합쳐 네 가지 원칙이 변함없이 적용되면서 팔봉비평문학상의 성격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15일의 1차 본심에서 유종호, 김윤식, 김병익, 김주연 네 분의 심사위원들은 연장자인 유종호 선생을 위원장으로 호선한 후 미리 작성해 놓은 지난 1년간의 평론집 목록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40여권에 달하는 평론집 중 김명인의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김진석의 ‘소외에서 소내로’, 박철화의 ‘문학적 지성’, 서영채의 ‘문학의 윤리’, 황도경의 ‘환각’을 어렵지 않게 골라냈다. 그리고 2주에 걸쳐 40대 평론가 5명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29일 2차 본심에서는 5권의 평론집을 놓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강조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순서 없이 그러나 열정적으로 각 평론집에 대해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이른바 비평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다, 새로운 세대의 비평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험적인 정신의 모습이 흥미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개진했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는 모범적 토론, 아니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 1시간 남짓 흘렀을 때 저절로 심사는 끝나 있었다. 심사위원 누구도 아무개를 수상자로 결정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30년대의 임화와 김남천을 염두에 두며 자신의 평론집 제목을 ‘소설의 운명’과 ‘문학의 윤리’라고 붙인 야심적인 비평가 쪽으로 행복하게도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영채씨의 평론집에 대해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졌음을 확인하는 데에는 "이제 결론을 냅시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 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홍정선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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