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대구 계성(啓聖)중·고가 내년 10월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인외상제지지본’(寅畏上帝智之本·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잠언 1장7절)이라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해 신지식 신학문의 전파자로,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한 세기를 지켜온 계성학교는 그간 6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세계 속의 명문 학교로 비상하고 있다.
◆ 글로벌 인재 양성 주력 = 계성학교는 새천년을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고 자기 주도하에 인류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정신을 길러주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등학교로서는 이례적인 재학생 해외 어학연수. 내년부터 고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20명씩 모두 40명을 선발해 비용 전액을 학교가 부담하고 3∼4주간 미국에 보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02년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상하이 차오양(曹楊)중학교(5년제)와의 교사·학생 교류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5월 중 35명의 학생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4박5일간 차오양중 학생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현지문화를 익히고 우호를 다지게 된다. 가을에는 차오양중 학생들이 계성학교 학생들의 집에 머물며 한국의 전통문화와 발전상을 배운다.
기독교 정신과 개척정신 함양을 위한 사랑의 봉사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내년 1월초 꽃동네에서 2박3일간 실시하는 자원봉사활동에 벌써 200여명이 참가신청을 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계성고의 학교 운영에는 미션스쿨이 가지는 자유스런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학교는 수시로 교사와 학생의 좌담회를 열어 수업과정을 비롯한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자율적으로 실행한다.
◆ 개교100주년 기념사업 = 계성학교 총동창회와 중·고 재단은 지난해 6월 기념사업을 위한 첫 회의를 연 뒤 10여차례 토의를 거쳐 지난달 23일 기념사업협의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장학, 협력, 재정, 집행 등 각 분야별 위원회와 행사준비팀을 구성하고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중이다.
우선 내년 개교기념일에 장학재단을 출범시키고, 서울에 학숙을 지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졸업생들의 학업 편의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초기 출연금 3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학재단 출범과 20억원이 들어갈 학숙 건립자금은 모두 동문 모금을 통해 충당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연초부터 계성발전세미나, 마라톤, 걷기대회 등 다양한 문화체육행사가 펼쳐진다.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10월 건립되며, 계성문학 100주년 특집호 발간, 동문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체육대회도 마련된다.
올해는 매년 10월 개최해온 중학교 가을축제를 개교 100주년을 맞아 어머니합창단 공연, 학부모작품전 등 학부모와 함께 하는 축제로 꾸밀 계획이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 걸어온 길/ 일제치하 항일운동 앞장 유도 올림픽金 3명 배출
계성학교의 역사는 1906년 10월15일 미국 북장로회 안의와(James E Adams) 선교사가 대구 중구 남성로의 옛 제일교회 선교사 사택에서 27명의 학생으로 첫 수업을 시작한데서 출발한다. 당시 대구에는 4, 5개의 초등교육기관은 있었지만 중등교육기관은 영남에서 계성학교가 처음이었다.
1908년 3월에는 영남 최초의 신식 2층건물인 아담스홀이 준공되면서 지금 계성학교가 있는 자리로 학교를 옮겼다. 아담스홀은 지붕은 기와를 얹은 한·양 절충식이며 석재는 1907년 대구성을 해체하면서 나온 것을 주로 사용, 대구 근세건축사가 그대로 배어있다.
아담스홀은 고교 본관으로 사용중인 헨더슨홀과, 계성교회로 쓰고 있는 맥퍼슨홀과 함께 2003년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계성고는 영남지역 항일운동의 주역이었다. 3·1운동 당시 대구지역에서 일제에 체포된 인사는 모두 157명. 이중 76명이 징역 6월 이상 형을 선고받았고 이들 중 44명이 계성학교 졸업생과 전·현직 교사, 35명의 재학생이었다. 당시 계성학교 전교생은 46명. 교사와 학생 대부분이 옥고를 치르게 된데다 일제의 강압으로 1년간 휴교하는 수난을 겪었다. 1945년 2월에는 일제의 강압으로 교명도 대구공산중학교로 바꾸는 비운을 겪었다.
계성이 배출한 인재는 그 역사만큼 많다. 시인 박목월, 작곡가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졸업했고 박목월은 후에 모교 교단에 섰다. 작곡가 현제명, 소설가 김동리 등도 한때 계성학교를 다녔다.
한국 유도는 계성학교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유도 10단 신도환을 비롯, 안병근 김재엽 이경근 3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중·고 유도부는 전국대회에서만 25차례씩 우승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법조계, 학계 등에도 기라성 같은 인재를 많이 배출했지만 유독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에 유명인이 많은 것은 자유로운 기독교적 전통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김대환 노동부장관과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이 계성고 55회 동기동창인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정인표 교장/ "재단 탄탄…자립형 사립고 전환 검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인재를 키워 새천년을 선도하는 세계 최고의 명문고로 우뚝 서는 것이 계성의 과제입니다." 계성고 56회 졸업생인 정인표(55) 교장은 계성의 목표는 국내가 아닌 세계 최고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정 교장은 "신지식, 신학문 전파의 산실이었던 계성고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일찍부터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재을 양성하는데 힘써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정말 먹을 것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인 1954년 교사 5명과 학생 7명, 이듬해는 교사 1명과 학생 6명을 학교 지원으로 미국에 유학보냈다"며 "중국, 폴란드 학교와의 자매결연을 통한 학생 교류와 재학생 해외어학연수는 이 같은 교풍에 바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50년대 중·고교에 교사들을 위한 별도의 개인연구실을 마련한 곳도 계성이 유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장은 최근 학교 이전 문제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현재 학교가 있는 대구 중구 대신동은 교통과 교육환경이 악화, 이전을 추진중이지만 각종 규제로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 상리동으로 이전키로 하고 6만여평의 부지 매입도 거의 마쳤지만 고도제한 등 뜻밖의 복병을 만나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새 교사에서 치르려던 계획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기존 교지는 그냥 매각하는 대신 아담스관 등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을 보존하면서 나머지 부지는 학교 발전을 위한 재정확충용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정 교장은 이와 함께 어느 학교보다 탄탄한 재단 지원 아래 자립형사립고로의 전환도 신중히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입시제도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지만 계성고는 세계 최고의 명문고 육성을 위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정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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