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고용의 질’을 높이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고용의 질’을 높이면

입력
2005.05.09 00:00
0 0

오랜만에 노사정이 모여 합의로(?)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을 유예시켰다. 사실상 정부 안의 폐기 처분으로 보인다. ‘기간제·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법안 명칭에서 보듯이,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 및 학자들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도 비정규직 보호를 통한 활용 확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보호’를 ‘고용의 질’로 보고, ‘확대’를 ‘고용의 양’으로 보면, 정부안은 외견상으로는 고용의 질을 높여 고용의 양을 확대하자는 것으로 방향에서는 매우 선진적인 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안이 비정규직의 임금이나 고용 안정성, 훈련 및 경력 개발 기회를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정부안은 고용의 질을 적극적으로 높여 고용의 양을 확대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고용의 양과 질 사이에는 상쇄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고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낮은 질의 고용이라도 확대함으로써 고용의 양을 확대시킨 반면, 유럽 국가들의 경우 고용의 질을 유지하려다 보니까 양의 확대에 실패하였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고용의 질이 고용의 양을 보장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생산가능인구 대비 취업자수를 나타내는 고용률의 증가는 고용의 질 증가를 동반했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보수 수준을 높이며 훈련과 경력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작업장에서의 효율성, 공정성, 노사 협력 등을 통해 기업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일자리 기회를 확대하였고, 노동 공급 유인을 높이고 노동시장 이탈 현상을 줄이는 데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의 양과 질 사이의 포지티브한 관계는 여성, 청년, 고학력자들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양질의 일자리 비율이 높은 국가의 경우 여타 국가에 비해 여성 고용률이 5% 포인트 이상 높고, 고학력 계층에서는 15~20% 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동안 비정규직 활용이 전체적인 고용 성과를 높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임시일용직 비율은 1995년 41.9%에서 2004년 48.9%로 증가하였으나 고용률은 95년 60.6%에서 2004년에 59.8%로 거의 정체 상태이다. 청년 및 여성의 고용 성과가 부진한 것도 노동시장에 매력적인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낮은 질의 일자리는 저숙련 인력을 노동시장으로 통합하는 효과적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실업이나 비경제활동 상태의 저숙련 인력이 노동시장으로 단순히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통합되어 다시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일자리의 안정성 및 고용 전망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고용 질의 상향 없이는 ‘질 낮은 고용-저생산성-실업 및 노동시장 이탈-사회적 배제’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상향이동의 동학을 창출하는 것은 일자리의 질뿐만 아니라 양도 높일 수 있다.

고용계약은 피고용자와 고용주 간 교환의 반복게임이다. 고용주가 제공하는 일자리의 질과 피고용자가 제공하는 노력 간의 교환이다. 두 플레이어는 과거 상대방의 행위에 근거하여 현재 자기의 기여 수준을 결정한다. 고용주가 저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면 당연히 피고용자가 제공하는 헌신과 노력도 줄어든다. 일자리 상향운동 없이 생산성 상향운동도 없다.

6월 국회에서는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비정규직 고용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향에서 수정되어 노사정 합의로 통과되었으면 좋겠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