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의 작가 전성태(사진)씨가 6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창비 발행)을 냈다. "물비린낸지 흙내인지 쿠더분한" 향기의 푸근하고 힘진 문장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며, 고향 농촌의 아픔을 품위 있는 해학으로 품었던 작가다.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달라진 문장과 서사 지평을 선뵈고 있다.
가령 표제작에서 만나게 되는 서사와, "그는 이 불온한 쾌감이 육체의 열락과 동등하게 놓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와 같은 문장이 그렇다. 표제작은 일본 관광객들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국경을 걸어 넘던 중 꼬마의 호루라기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며 도망치는 화자의 해프닝을 통해 분단국가 국민의 국경선 콤플렉스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일본 여인과 사랑을 나눈 뒤 경험하는 묘한 충만감을 위의 문장으로 묘사한 뒤 작가는 "그러자 마음 한쪽에서 또 다른 혐오감이 치밀었다. 뭔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제자리인 자신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고 이어놓고 있다. 이 작품에서 국가와 민족의 층위에 놓여있는 집단의식과 그 틈바구니에 놓인 자의식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면, ‘퇴역 레슬러’나 ‘사형(私刑)’은 한 시절 영웅으로 군림했던 레슬러와 퇴역 장군이 고향 마을의 지배정서와 낯설게 대면하는 현장, 그 불편한 내면의 궤적을 새긴다.
‘소를 줍다’처럼 전작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이쯤 되면 그의 소설이 ‘고향’에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현장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작가적 고민을 그는 소설집 맨 앞에 놓인 ‘존재의 숲’에서 개그맨과 점쟁이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전한다. "선생, 해학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캄캄한 삶을 밟아야겠지요. 그러면 말이 자연히 따르지 않겠소? 요새 사람들, 캄캄한 이야기를 싫어할 것 같지만 실상은 없어서 못 듣는 것이리다."
새로운 현장으로서의 ‘캄캄한 삶’들이 그의 ‘푸근하고 힘진’ 인광으로 하여 위로 받고 밝아지기를.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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