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주택시장에서 생기는 모든 (투기적) 이익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임대주택정책 개편방안’을 주제로 한 국정과제회의에서 "창조적 소득은 인정하되 투기적 소득은 정부가 일체 인정하지 말자"고 밝혔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보유세 강화, 실거래가 양도세 과세, 개발이익 환수 등을 골자로 한 ‘5·4 부동산대책’이 발표되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국민들은 단시일 내에 대통령의 인식에 호응하는 부동산 투기대책이 나오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집값만은 안정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이를 위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행위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불사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드러났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식이 옳은 것인지, 대통령의 인식에 호응한 정책들이 소기의 목표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주택시장에서 투기적 요인을 제거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장차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한 주택 구입은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다. 잦은 이사를 통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주택의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집값 상승으로 발생한 소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도라는 자본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개인이윤 추구가 자본주의를 가동시키는 원동력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자본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의도로 말했을 리야 없겠지만 거칠어도 너무 거친 표현이다. 뒤따르는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창조적 소득’과 ‘투기적 소득’의 차이를 모르겠다. ‘투기’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함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투기는 시장경제를 살아 숨쉬게 하는 원동력이다. 위험과 손해를 무릅쓴 경제적 의사결정이 바로 투기일진대, 투기라는 모험과 도전에 보상이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위법이나 불법요인이 없다면 투기는 시장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든다. 투기를 단지 단시일 내에 큰 돈을 버는 행위로 인식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뿌리 뽑아야 할 것은 투기가 아니라 투기에 기생하는 위법·불법 행위가 아닌가.
정부 정책들이 주택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것도 시장경제의 기본을 무시한 이 같은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경기회복을 위한 확장적 거시정책은 지속돼야 한다"면서도 "행정적 개입을 통해서라도 부동산 투기는 막아야 한다"고 밝힌 경제부총리의 논리 역시 ‘투기’라는 주술에 걸린 궤변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강남권의 10~15층짜리 중층 아파트의 재건축은 억제하되 저밀도 아파트는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재건축을 허용한다는 방침, 일부 재건축단지의 일반분양 보류나 위법 여부 조사 등은 일관된 주택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집값 급등 움직임에 ‘일단 불을 끄고 보자’며 고단위 해열제를 투약하는 것으로 비친다. ‘5·4 부동산대책’ 역시 단위만 높인 해열진통 처방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것은 누구도 강남의 집값이 안정되고, 정부의 단속이나 규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세청이 전국 19개 지역에 대해 부동산투기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철시한 중개업소를 기웃거리는 게 고작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투기수요 억제가 장기적으로는 공급부족을 초래, 집값 급등 요인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택공급 확대는 물론 경기 부양을 위해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죽일 수 없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강남 집값에 집착해 전체 주택정책을 왜곡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두더지를 잡기 위해 기름과 물을 교대로 부어대는 식의 응급처방이 주택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