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이 1809년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집권 여당의 대안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번 총선에서도 토니 블레어(52)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의 사상 첫 3기 연속 집권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처지다. 2차 세계대전 영웅 윈스턴 처칠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등의 총리를 배출하며 20세기 영국을 이끌었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제1야당인 보수당은 한달 전 선거를 위해 의회가 해산됐을 때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블레어 총리가 미국과 함께 진두지휘했던 이라크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폭로들이 쏟아져 나왔다. 블레어 총리를 ‘부시의 푸들’이라며 비꼬는 등 집권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확산됐다.
그러나 장기 경제호황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노동당이 이민법 강화 등 우파정책을 대거 수용하는 보수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통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당의 정체성만 흠집났다. 투표를 하루 앞둔 4일 더 타임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의 지지도는 노동당의 41%보다 훨씬 못치는 27%로 나타났다.
보수당의 무능력은 좌파이면서도 친기업적 실용주의 노선을 펼치고 있는 노동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데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도 지지의사를 밝힌 탓에 블레어 총리를 ‘거짓말쟁이’라고 욕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보수당을 쇄신할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없는 것도 큰 문제다. 대처 정권 시절 내무장관으로 주목받았던 마이클 하워드(63) 당수는 2003년 취임 후 이민규제 강화 등 전통 보수수의를 내세워 선명성을 부각하려 하지만 블레어 총리의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은 97년 블레어 총리의 집권 이후 총선 승리를 위해 존 메이저(1990~1997), 윌리엄 헤이그(1997~2001), 이언 던컨 스미스(2001~2003) 등 3명의 당수를 바꿨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불명예를 하워드 당수가 이어받을 판이다.
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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