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 위원장은 인기가 최고다. 공공기관 이전 때문이다. 위원장실에는 그를 만나려는 시·도지사, 공공기관 장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더 나은 지역으로 가려고, 더 큰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대담 중에도 메모가 몇 번이나 들어왔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계획이 발표되면 그는 원망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악역을 맡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국가균형발전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역설하는 성 위원장을 만나보았다.
_전 세계가 총체적 경쟁시대에 접어든 지금 공공기관 이전 등 수도권 분산정책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에서 1만4,000달러가 됐습니다. 상당한 성장이 있었지요. 여기엔 두 가지 발전전략, 요소 투입형 전략과 수도권 집중육성 전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2004년 OECD 조사를 보면, 미국 덴마크 스웨덴 등 인구 1위 도시의 비중이 낮은 곳이 경제력이 높고, 1위 도시의 비중이 높을수록 경제력이 떨어집니다. 우리는 현재 병목 지점에 와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토지, 주택, 노동 등 생산요소의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우리 경제가 지금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나 ‘한계점을 향한 성장’(Growth to Limits)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환율 덕분에 국민소득이 1만 4,000달러지만, 실질적으로 1만 달러에서 멈춘 게 10년째입니다.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경제적 전략으로는 요소 투입형 대신 혁신주도형 전략을 택하고, 공간전략으로는 여러 거점을 발전시키는 균형발전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각 지역이 비교우위를 살릴 수 있는 전략산업을 키우고 클러스터(집적단지)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늦게 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국력을 훨씬 강력하게 키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_그렇지만 수도권에는 공동화의 우려가 엄연히 존재하는데요.
"공공기관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실제 기업이나 민간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누구의 경쟁력이 약화되는지 묻고 싶어요. 공공기관이 나간다고 해서 삼성에 무슨 문제가 생기나요.
수도권 인구비중이 지난해 47.9%이고 2011년에는 50%를 돌파합니다. 연간 30만 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앙부처 옮긴다고 이게 줄어들겠습니까. 행정기관 1만 명, 공공기관 3만 명 합쳐 4만 명에다 가족까지 합쳐도 20만 명 정도 옮기는데, 1년 인구증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어떻게 공동화가 생길 수 있나요.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_그렇다면 여당이 수도권 발전대책을 서둘러 내놓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공기관 이전을 준비할 때부터 수도권 대책의 명확한 방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인구 비중 안정화입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이 최대 54%까지 올라갈 전망인데, 이게 바람직합니까. 2003년 말 당시 수도권 인구 비중인 47% 선에서 안정시키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둘째는 수도권 삶의 질을 획기적 개선하겠다는 것입니다. 런던은 녹지비율이 39%, 베를린도 그 정도예요. 어딜 가더라도 녹지비율이 서울만큼 낮은 곳이 없어요.
셋째는 수도권은 수도권 대로 산업적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데 이는 개개인의 부가가치 생산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서울도 기술·지식 집약적 산업으로 재편해 개개인의 부가가치 생산력을 올려야 합니다. 네 번째가 수도권의 규제개선, 규제개혁입니다.
수도권 발전대책과 공공기관 이전은 함께 가야 합니다. 공공기관이 이전하더라도 수도권은 지금보다 더 멋지고 활력있게 만들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상생의 빅딜입니다. 행정도시특별법 통과 이후 수도권 대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다 보니 급조된 인상을 줬지만, 수도권 대책의 골격은 충분히 준비돼 왔습니다."
_정치권의 수도권 대책과 국가균형발전위가 준비한 대책은 별개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_정부는 공공기관을 지역의 전략산업을 고려해 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미 지방간에 존재하는 산업화 격차를 심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두 원칙이 있어요. 형평성과 효율성입니다. 우선 형평성을 적용, 낙후 지역에 기관수와 직원 수를 더 많이 배치할 것입니다. 그 틀 속에서 효율성에 따라 지역 전략산업의 육성에 도움이 되는 기관을 배치할 계획입니다."
_낙후한 지역이라면.
"전남 전북 강원이 제일 낙후됐습니다. 경남 경북에 낙후 지역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총량적으로 낙후도가 더 높다는 뜻이지요. 이런 곳에 기관 수와 직원 수를 더 배려할 것입니다."
_한전 등 대형 공공기관 10개를 지자체와 협의하지 않고 일괄 배치키로 했는데요.
"180개 기관의 의사를 물어서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희망을 물어보니 지자체는 특정 대형기관에 몰리고 공공기관은 충청권으로 이전하고 싶어하더군요. 언론 표현대로 동상이몽의 극치입니다. 정부가 결정할 수 밖에 없어요."
_정부가 공공기관 이전비용 12조원, 공공기관의 자산매각대금 8조7,000억원으로 3조3,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그 이전 비용은 각 기관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잠정 추계일 뿐입니다. 자산 매각 대금도 실제 얼마일지 모릅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았어요. 공공기관을 이전하면서 각 도에 혁신도시 1개씩을 만드는데, 분당이나 일산처럼 신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적용하면 재정투입을 최대 제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개발이익을 환수해 공공기관 이전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_이전 후 남는 부지는 어떻게 합니까.
"과천 성남 안양은 공공기관이 나간 뒤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과천의 경우 리서치파크, 성남은 비즈니스파크, 안양은 멀티미디어파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과천은 산학협동연구단지로 만들고 성남은 해외기업도 입주하게 해서 동북아 비즈니스의 거점이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안양은 지금 안양예고나 영화제작소 등이 있는데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의 적지라고 합니다. 공공기관으로 100의 효율 냈다면 이런 변화로 1,000의 부가가치를 낼 수 있어요. 제발 부정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_공공기관 노조의 반발도 적지 않은데요.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분들에게 옮기라고 하는데 대해 정부로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사 가더라도 자녀 학교, 주택 등 생활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많은 대안을 준비 중입니다.
학교 문제는 자립형 공립고를 만드는 것을 검토중입니다. 포항제철이 포철고를 두고 있듯이 한전도 한전고를 왜 만들 수 없겠습니까. 대형 공공기관이 멋진 학교를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들 자립형 공립고는 지역의 명문고가 될 것입니다. 정부 내에서 논의 단계인데, 적극 추진할 생각입니다. 주택 문제의 경우 세금이나 분양 등에서 1가구 2주택 정책의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지방에 집을 갖더라도 서울 집을 2주택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해 재산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노조의 다른 요구도 수용할 생각입니다.
도시 이름도 일본의 도요타시처럼 한전시, 토공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관들이 떠밀려서 내려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비전을 가지고 가면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강제이전’이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됩니다. 공공기관 이전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근거한 합법적 정책입니다."
_그 동안 발표가 여러 차례 연기됐는데, 5월말까지는 발표할 겁니까.
"그렇게 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_수도권 대책으로 규제개선을 내놓았습니다. 규제완화와 어떻게 다릅니까.
"지금까지 수도권 밀집을 막기 위해 대학, 공장, 대형유통시설에 대해 규제로 진입장벽을 쳐놓았습니다. 이걸 풀면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규제를 무작정 완화하지 않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총량제의 경우 현재 대기업이 수도권에 공장을 신·증설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때문에 대기업이 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막기 위해 첨단업종 범위 내에서 대기업의 수도권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장 총량은 유지할 것입니다. 외국투자기업도 첨단산업이면 수도권에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지요. 또 공공기관 빠져 나간 지역은 정비발전지구로 지정, 혜택을 주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키우는 것입니다. 병목점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려내 국부를 키우겠다는 것이죠. 지금 전국에 전망있는 클러스터가 12개 정도 있습니다. 여기에 공공기관을 붙여서 각 지역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서울도 발전방안을 갖고 있습니다. 여의도는 금융, 강남은 IT와 금융비즈니스, 동대문은 패션과 의류, 홍릉은 메디컬 클러스터가 가능합니다. 각 대학 총장들도 만날 예정인데, 대학 주변에도 산학 연구단지를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서울이 지금보다 훨씬 멋지고 활기 넘칠 수 있습니다. 서울이 뉴욕의 경제적 활력과 파리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 못하겠습니까. 긍정적으로 보면 정말 상생의 빅딜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사진 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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