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콧대 높은 브랜드로 유명한 샤넬이 모조품 보석을 이용한 저가 코스튬 주얼리의 창시자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고가의 보석이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상류 사회 여성들을 겨냥해 "목에 지폐를 걸고 다닌다"고 비아냥거렸다. 모조 진주라 해도 샤넬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진짜보다 비싸게 팔리는 현실은 논외로 하자. ‘보석도 액세서리일 뿐’이라는 샤넬 정신이 지금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진짜 보석은 아니지만 패션 감각과 매혹적인 자태만은 진품을 능가하는 이른바 코스튬 주얼리의 전성 시대다.
3일 오후 4시 서울 명동 거리. 20대 여성 서넛이 액세서리 좌판 앞에서 탄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좌판에 진열된 상품은 노랑 파랑 연두 분홍 등 보기만 해도 젊음이 물씬한 화사한 색상의 목걸이며 팔찌, 반지. 좌판 위에는 ‘자하라 스타일 팔찌 반지’라고 쓴 종이가 올려져 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코스튬 주얼리 ‘자하라’의 모조품들이라는 뜻이다.
자하라는 코스튬 주얼리의 대표 주자다. 화사한 칼라와 커다란 크기가 브랜드 컨셉이라 ‘볼륨 주얼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샤베트처럼 투명하고 알록달록한 제품들에는 크리스탈을 여기 저기 박아 열대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인다. 반지 낀 손가락은 옆 손가락에 붙지 않을 정도로 부피가 있는 반지고, 목걸이는 대여섯번은 감아야 할 만큼 길거나 펜던트 하나가 탁구공 만큼이나 크다. 원래 인공 치아의 소재였던 레진을 코스튬 주얼리의 주요 소재로 처음 썼다 해서 화제를 모았지만 지금은 소재보다 스타일의 독특함 때문에 인기를 끈다.
스와치 시계에서 나오는 스와치 비주도 한창 잘 나간다. 스털링 실버에 레진이나 세라믹, 실리콘, 스테인레스 스틸 등 보석과는 거리가 먼 소재들을 이용해 화려한 색감과 부피를 자랑한다. 크리스탈을 듬성듬성 박아서 반짝이는 느낌을 강조한 것이 많다.
이랜드에서 출시한 클루도 이 대열에 합세했다. 스털링 실버에 알록달록 인조 보석들을 달아 유머러스한 느낌을 강조했다. 클루는 지난달 15일 명동에 첫 매장을 연지 한 달도 채 안됐지만 이 달 안에 전국에 걸쳐 20개 매장이 문을 열 정도로 인기다.
코스튬 주얼리의 급성장은 최근 패션이 브랜드명보다 가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삼성패션연구소의 서정미 수석은 "패션이 상류층의 기호품이자 계층 차별화 수단이었던 시대가 끝났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값비싼 명품 브랜드로 휘감는 대신 ‘패션을 즐길 줄 아는’ 감각이 있어야 패션 리더로 인정받는 시대엔 주얼리도 가격 대신 패션 감각이 우선시 된다는 설명이다.
클루 마케팅 담당 김용채 씨는 "예전에는 18K 목걸이 하나를 사면 정장이든 청바지든 옷차림에 상관 없이 그 목걸이를 하고 다녔지만 요즘엔 옷차림에 따라 주얼리도 맞춰서 하는 추세"라며 "캐주얼 트렌드가 지속되고 패션을 놀이나 유머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주얼리도 더 화사해 지고 (가격면에서)부담이 없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코스튬주얼리의 가격은 대부분 목걸이 5만~10만원대, 반지 2만~4만원대, 팔찌 2만~5만원대, 귀걸이 3만~6만원대로 저렴하다. 의상에 맞춰 수시로 바꿔 해 주기에 부담이 없는 가격이다. 자하라 마케팅실 김경희 실장은 "기존 주얼리 브랜드가 금이나 은, 진주 등 한정된 소재로 인해 디자인의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고 비싼 반면 신소재를 사용한 코스튬 주얼리 브랜드들은 싸면서도 색상이나 디자인에서 훨씬 다채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며 "젊은 감각파들의 패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만"이라고 말했다.
노출의 계절 여름이 다가 온다. 샤베트처럼 알록달록 달콤한 코스튬 주얼리의 인기는 이제 막 시작이다. 클루의 김영채 씨는 "코스튬 주얼리는 일종의 틈새 시장이었지만 올 여름을 분기점으로 엄청난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예견했다.
■ 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
진짜 다이아몬드나 루비 진주 등을 세팅한 파인 주얼리(fine jewelry)의 상대개념. 금속이나 플라스틱 나무 등을 폭넓게 활용해 만든 모조석을 이용한 액세서리류를 통칭한다. 원래는 무대의상 등 특수목적을 위해 만들었으나 샤넬에 의해 패션주얼리로 상업화됐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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