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본 차이나 제품이 이런 아름다움을 얻기는 정말이지 쉽지 않겠다. 그것도 98세의 할머니가 디자인한 제품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미국 워싱턴DC의 힐우드 미술관(www.hillwoodmuseum.org)이 요즘 20세기를 대표하는 한 노(老)디자이너의 전시회 때문에 성황이다. 기계적인 초기 현대 디자인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은 혁명적인 예술가, 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도 굴복하지 않은 강인한 여성…. 힐우드 미술관은 4월 19일부터 12월 3일까지를 산업예술가 에바 차이젤에게 헌정했다.
그는 전시회 ‘재미있게 아름다움을 찾기’ 개막 전날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을 대부분 자기 표현으로 보는 현대 예술가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며 "쓸모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다운 말이었다. 그가 예전에 쓴 저서에서 "멀리 있는 물건, 오래됐거나 현대적인 삶과 오래 전에 죽은 문화에 관해서 말해주는 것이 디자인이다"라고 한 언급과 일맥 상통한다.
그는 190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이다. 원래 화가가 꿈이었지만 대학을 세 학기 마친 후 생계에 도움이 되는 도예가가 되고자 길드에 최초의 여자 수련생으로 입문했다.
도예가로서 그의 명성은 몇 년 후 헝가리를 넘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헝가리 정부는 그의 작품을 해외에 출품하도록 추천했고, 이를 발판으로 부다페스트의 키스페스트도자기 회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장난스러운 동물 디자인을 도입하는 등 기발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파리 등 유럽 전역을 돌며 일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훗날 독일의 현대건축, 파리의 현대미술과 교감하며 실용성과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조화한 현대 감각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80여 년 동안 도예가와 디자이너로 정열적으로 활동한 그에게 디자인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대량 생산품일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을 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디자인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한테 보내는 선물이지요"라고 말했다.
1938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신세계를 경험한다. 세련된 우아함과 대담한 재치가 어우러진 실용적인 식기 세트들은 이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60년대 중반 은퇴 전까지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이 일품인 그의 도자기 작품은 미국 도자기 공예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는 70세 때 고향인 헝가리로 돌아가 다시 디자인을 시작했다. 90세를 훌쩍 넘겨 노안으로 눈이 불편한 지금도 꽃병, 램프, 가구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선 최근 디자인한 와인잔 세트도 선보였다. "디자인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감정을 교류하는 멋진 통로입니다. 내가 디자인한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제 디자인은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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