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 서울 여의도 한복판 땅 밑에서 발견된 커다란 지하 벙커(bunker·엄폐호, 은신처)를 놓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와 국방부 등이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어 의문을 더하고 있다.
서울시는 5일 "여의도에 대중교통 환승센터를 짓기 위해 4월 중순 현지조사를 하던 중 옛 중소기업 전시장 앞 도로 아래에서 180평 규모의 지하 벙커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최진호 서울시 교통개선추진단장은 "평소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사진 1)가 있어 공동구(상·하수도와 전화케이블 등을 매설하는 지하터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내시경을 넣어 보고 벙커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벙커 내부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철문을 통해 계단으로 연결된 2개의 출입구가 있는 160평 규모의 공간(사진 3) 한쪽 벽 앞에는 지휘대가 놓여 있고, 화장실과 기계실이 붙어 있다. 이 공간과 복도로 연결된 20평 규모의 작은 방에는 소파가 놓여 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이 갖춰져 있다. 이 방은 또 다른 출입구로 가는 계단(사진 2)과 연결돼 있다. 3개의 출입구는 여의대로 중앙화단과 도로변 화단에 설치됐으며 나무 판자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벙커의 존재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지하시설물 도면 등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부터 10여년간 국군의날 행사가 여의도에서 열렸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의 유사시 대피용 방공호로 쓰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군 관련 시설물이 아니며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여의도는 서울시가 만든 시설물로 지하에 어떤 벙커가 있다면 서울시에서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의 지하 벙커가 수십 년 동안 누구도 실체를 모른 채 버려져 있었고, 관리 주체도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일부에서는 이 벙커가 국회의사당과 연결돼 유사시의 방공호나 대피소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최진호 단장은 "벙커 화장실 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교통카드 판매소와 매점 등을 만들어 환승센터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시설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전에 이 벙커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당국이 존재를 모를 수 있었는지서울시민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글=김정곤기자 kimjk@hk.co.kr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사진=조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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