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6자회담을 북핵 해법의 최선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선의 길은 6자회담"이라고 누누이 설명했다. 이날 회견에서 그는 군사적 행동이나 안보리 회부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 같은 방안들의 현실성이 낮다는 점도 분명히 인정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함께 6자회담에 참여해온 한 중 일 러 4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안보리에 회부했다 해도 대북결의나 제재를 끌어내는 데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이 문제가 된다. 부시 대통령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현실적 장벽들을 언급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북핵 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대량살상무기확산 방지구상(PSI) 등을 통해 북한을 압박한다 해도 이들 두 나라와 한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섣부른 군사적 선택은 어떤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지 가늠조차 어렵다. 결국 부시 대통령의 선택은 6자회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불참선언으로 중단된 6자회담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분위기 조성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렇다 할 노력이 없다. 성의를 보이기는커녕 북한을 자극하고 북한 김정일 정권에게는 체제위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친 언사들을 쏟아낸다. 이번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위협하고 허풍을 떤다’ ‘폭군’ ‘위험한 인물’ 등의 거친 표현들을 썼다. 개인적인 혐오감이야 어쩔 수 없지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할 상황에서 결코 현명한 언행이라고 할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는 최근 백악관 만찬에서 남편이 크로포드 목장에 자주 가지만 목장 일은 잘 모른다면서 "언젠가 말 젖을 짜려는데 그놈이 수놈이었다"고 털어놓아 폭소를 자아냈다고 한다. 6자회담이 중요하다면서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수말을 붙잡고 젖을 짜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북한의 지하핵 실험 임박설까지 나돌면서 북핵 사태에 대한 비관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이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데도 중국과 한국 등 삐딱한 우방국들이 대북 압력 행사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측이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 참모들이 김정일 정권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진지한 협상을 기피한 결과 북한의 핵 능력만 키워주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1기 집권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북한은 기껏해야 핵무기 1~2개를 갖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6~8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최소한 동결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무기고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버릇 없는 아이’에게 보상을 해줄 수는 없다는 자세만으로 북핵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미국의 위협을 지나치게 크게 부풀려 보는 북한의 피해 망상적 사대주의도 문제다. 하지만 북한의 체제 우려에 대해 최소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러시아가 인정하는 수준으로 미국의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이 이런 고민도 없이 밤 9시만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면 한반도에서는 불면의 밤들이 늘어만 갈 것이다.
이계성 논설위원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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