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16일 오전 5시 29분.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지역인 앨러모고도에서 그때까지 인류가 목격한 가장 거대한 불기둥이 섬광과 함께 치솟았다. 지구상의 첫 핵실험이었던 그 불꽃은 200㎞ 떨어진 곳에서도 보였다. 미국의 핵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인류는 악몽과도 같은 핵의 공포를 지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었다. 첫 핵실험에 쓰인 핵폭탄의 이름은 성부·성자·성령의 3위일체를 뜻하는 ‘트리니티’였다.
■ 1945년 8월9일 플루토늄을 원료로 한 트리니티와 쌍둥이 원자탄 ‘팻 맨’(뚱뚱보)이 일본 나가사키에, 사흘 앞선 8월6일 히로시마에는 우라늄탄인 ‘리틀 보이’가 각각 투하됐다. 그 가공할 위력은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냈지만 강대국들의 핵개발 경쟁의 방아쇠를 당긴 계기가 됐다. 1951년 소련을 필두로 영국(1952년) 프랑스·중국(1964년) 등이 차례로 핵실험에 성공했고 인도(1974년)와 파키스탄(1998년)까지 가세했다. 1998년까지 모두 2,050회의 핵실험이 이뤄졌는데 미국이 1,030회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핵실험은 지표, 공중, 대기권외, 지하, 수중 실험으로 구분되는데 방사능 피해가 문제된 뒤로는 주로 지하 핵실험이 실시돼 왔다. 1960년대 중반 지하 핵실험을 제외한 대기권, 수중, 우주공간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됐다. 1996년에는 유엔총회에서 지하핵실험까지를 포함한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통과됐다. 그러나 최대 핵 강국인 미국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아 지금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제7차 평가회의에서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인 NPT 체제에서 비핵보유국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핵 강국의 논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핵확산에 가장 반대한다면서 자신들은 핵실험을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억지를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그런 미국의 핵에 핵으로 맞선다는 북한의 핵 억지력 논리도 무모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강행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배척하기 힘들다. 하지만 북한의 어느 산골 지하에서 핵실험이 실시됐다는 뉴스만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이계성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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