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갈등과 대립을 몰고 왔던 정치 쟁점 하나가 해소됐다. 국회가 그제 통과시킨 과거사법이 그것이다. 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역사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논란과 우려가 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여야가 이끌어 낸 합의의 중요성이다. 소위 4대 입법 문제라고 해서 끝없는 소모전을 벌여 왔던 현안 가운데 한 가지가 양보와 타협으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여야 합의는 여당이 참패한 4·30 재보선 결과의 영향으로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여당이 강경 일변도의 경직된 자세를 버렸고, 상대적으로 우세한 분위기 속에서 야당이 유연한 입장을 보일 수 있었던 탓이다. 각자가 분수와 양식에 맞게 생각과 행동을 바꿔 협상한 결과 타협이 도출될 수 있었다. 민심의 심판이 준 교훈이 합의의 정치를 낳은 것으로, 바람직하다. 이런 기조가 모든 의정에서 계속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자신들의 원안대로 처리되지 않았다고 해서 지도부를 공격하고 반대표결이나 기권으로 당론을 거부한 의원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상임중앙위원으로 지도부에 속한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강경개혁 세력이 실용주의적 노선을 내세운 지도부에 불만을 표시하며 노선갈등의 조짐을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선거에서 크게 졌으니 당에 후유증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개혁지상주의적 사고를 바꾸지 못하고 선거패배의 원인을 실용적 지도부로 겨누려는 행동은 무책임하다.
열린우리당의 비참한 패배는 바로 이런 집단사고에 빠진 채 오만과 독선으로 국정운영을 독점하려던 데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바람에 경제와 민생이 뒤로 밀렸고, 이에 대해 민심이 말한 것이 지난 선거였다. 집권 책임을 진 다수당이 아직도 각성을 못하고 당내 싸움이나 하면 곤란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