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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북초등학생들 시의회서 모의의회/ "일기장 검사 폐지안 부결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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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북초등학생들 시의회서 모의의회/ "일기장 검사 폐지안 부결 선포합니다"

입력
2005.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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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이틀 전인 3일 낮 11시 55분. 전남 순천시 의회 본회의장.

"의사일정 제3항 일기장 검사 관행 폐지안은 반대 11대 찬성 8대 기권 4로 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김지은 의장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이날 의회는 폐회했다.

의아해 하시는 분이 있으시리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폐지 권고를 왜 지방 의회에서 왈가왈부할까?

김지은 의장은 순천 북초등학교 6학년 학생(13)이다. 그리고 의장을 포함해 찬반 토론과 표결에 참가한 의원 23명도 모두 이 학교 4~6학년 학생들이다. 이날 의회는 제83회 어린이날을 맞아 순천시 의회의 제안으로 열린 어린이 의회 체험 행사였다.

그러나 토론의 열기와 초등학생답지 않은 의회 민주주의 진행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일기장 검사 폐지 안건은 김슬옹(11·4학년) 의원이 발의했다.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동료 의원 여러분… 일기장 검사 관행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본 의원이 발의한 원안대로 의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반대토론 하실 의원님 안계십니까?"라고 김 의장이 묻자 4학년 문지수의원이 발언대로 나왔다. "아무리 어린 초등학생이라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데 선생님들이 마음대로 보거나 검사하는 것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장력 향상이나 한글 교육을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5학년 류시현 의원도 "검사를 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형식적인 내용만 기록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5학년 채진재 의원은 "일기장 검사를 하면 매일 일기를 쓰는 좋은 습관이 길러지고 작문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학생 개개인을 더 잘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반론을 폈다. 5학년 고영창 의원도 "검사를 하지 않으면 인터넷 채팅 때처럼 이상한 낱말과 표기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학생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일기에 써서 선생님이 보시면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진짜 모의 시의회에 앞서 4차례 준비 모임을 지도한 신영옥(46·여) 교사는 학생들이 일기장 검사를 찬성한 데 대해 "아무래도 어른들을 의식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관행에서 탈피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평하면서도 "교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산 교육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잘 해주어서 기특하다"며 흐뭇해 했다. 북초등학교는 일기장 검사를 교사 재량에 맡겨 놓았다.

의사봉을 잡았던 김지은양은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모두들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기태 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의외로 알차게 진행된데다 반응도 좋아 매년 이 행사를 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의 의회에서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따른 규탄 성명서’와 ‘전남도청 이전에 따른 동부권 출장소 설치 건의안’ 등도 통과됐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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