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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혼혈 영유아 돌보는 '베들레헴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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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혼혈 영유아 돌보는 '베들레헴 어린이집'

입력
2005.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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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혜화동 우암길에서 경신고교 후문을 따라 100m정도 들어가자 ‘베들레헴 어린이집’이란 문패가 보였다. 4일 오전 20여평 남짓한 붉은 벽돌 2층집 철제 대문을 넘어 ‘꺄르르’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는 기저귀와 이불이 하얗게 흔들거렸다. 잘 정돈된 귀퉁이 화단에는 붉은 철쭉이 흐드러졌다.

마당에서 엄마역을 맡은 필리핀 아이 미영(가명·4·여)이가 3명의 또래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미끄럼틀과 그네에는 검은 피부에 눈이 큰 경수(가명·6)가 친구 4명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는 잠깐 조심스런 눈길을 보내더니 이내 우르르 달려와 "아빠, 아빠"하고 매달렸다.

베들레헴 어린이집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가 폭력에 못 이겨 나온 필리핀 베트남 등 외국 여성들의 혼혈 자녀를 길러 주는 곳. 처음엔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단체였지만 2003년 여름부터 그들의 아이를 하나 둘 맡다 보니 이 일이 본업이 됐다. 올 1월 자선단체에서 아예 어린이집으로 신고를 변경했다. 원장격인 세라피나 수녀 등 4명의 수녀, 필리핀인 보육사 3명, 자원봉사자 2명이 4개월~6살 된 아이 23명을 돌보고 있다. 매달 국가지원금 52만원을 받지만 운영비 800여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세라파니 수녀의 주선으로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모아 온 후원금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

5일은 베들레헴 어린이집이 생긴 후 처음 맞는 어린이 날. 마당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볶음밥 파티’를 열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줄 새 모자도 하나씩 준비했다. 작은 잔치, 소박한 물건이지만 아이들에겐 꿈같은 성찬에 하늘만큼 큰 선물이다. 아이들은 미리 모자를 꺼내 써 보며 즐거워했다. 베트남인 엄마를 둔 소영(가명·3·여)이는 또렷한 한국말로 "볶음밥 참 맛있어요"하며 어린이날을 기다리는 눈치다.

세라피나 수녀는 "아빠의 폭력에 시달릴 뿐 아니라 외모가 친구들과 달라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들이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사람을 피하고 음식을 먹으면 토하기만 했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에게 이번 행사가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 의정부 동두천 등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이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없는 주말에만 아이들을 데려간다.

이곳 아이의 엄마들은 한국에서 배우자를 찾아 주로 농촌총각이나 이혼남 등과 결혼했다.하지만 아직까지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혼인으로 인한 귀화자(대부분이 여성)’는 2000년 98명이었다가 2001년 350명, 2002년 2,224명, 2003년 5,623명, 2004년 5,596명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이들 중 34%가 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국적 취득을 신청하려면 혼인 후 2년이 지나야 하고, 반드시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동안에는 남편을 떠날 수 없다. ‘아름다운 재단’ 소라미 공익변호사는 "적어도 한국인 자녀를 출산한 외국 여성의 경우 국적 취득 요건을 완화해 아이와 엄마 모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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