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 잔치에 이렇게 재를 뿌려도 되는 겁니까."
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학생회관. 전날 고려대가 개최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이 학생들의 시위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두고 한 학생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재벌이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손님을 초대해 놓고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렇게 망신을 줘도 되냐는 것이다.
시위를 벌인 학생들은 물론 나름의 명분이 있을 것이다. 시위장에는 ‘명예 철학 박사가 아니라 노동탄압 박사다’ ‘무노조 경영도 경영철학이냐’는 등 이 회장과 삼성을 비난하는 구호가 난무했다. 삼성이 기부한 480억원으로 지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을 두고 ‘학교 측이 돈 받고 학위를 팔았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 학생들의 의도와는 달리 고려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고, 학교 측에도 동문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평가야 엇갈릴 수 있지만 삼성의 독특한 경영형태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딱히 그때 규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념관을 지어주겠다며 돈을 기부했을 땐 가만히 있다가 완공을 앞두고 이런 시위를 벌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회장과 삼성으로선 아닌 밤중에 봉변을 당한 억울한 심정일 것이다.
이날 행사는 이 회장 개인의 학위수여식이기도 했지만 각계 인사들이 모여 고려대 개교 100주년 축하를 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의 척박한 교육환경에서 태어나 100년의 역사를 지켜 온 고려대의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은 비단 학교 임직원과 교수들만의 몫은 아니다. 오히려 잔치의 주인은 학생일 것이다.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비판은 학창시절의 특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박선영 사회부기자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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