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 사회면(보통 8~10면)이 최근 센세이셔널리즘에 젖는다는 지적을 더러 받았다. 독자의 관심을 붙들기 위해 범죄 비리 스캔들 등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고 있다는 말인데, 오해다.
남편 어머니 오빠의 명의로 보험에 가입한 후 이들의 눈을 실명케 하고, 또 이들을 살해하려 집에 불을 질러 수억원의 보험금을 타내 마약을 복용하는데 탕진한 20대 전직 보험설계사가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달 29일자 8면 머릿기사다. 잔인한 범행수법과 집요한 범죄심리, 치밀한 전후계획 등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됐다. 센세이셔널리즘, 우리 표현으로 선정(煽情)주의에 젖은 기사 중의 하나라고 했다. 잘못된 지적이다. 선정주의란 사람들에게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감정이나 흥미를 불러일으키려는 태도나 수법을 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사실, 즉 팩트(fact)는 ‘선정적’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 하지만 센세이셔널리즘에 젖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의 본질인 사실취재와 메시지전달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마약중독의 무서움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마약의 위험을 고발한 그 어떤 특집이나 시리즈 기사도 이 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지는 못했다. 사회면 기사의 힘이고 팩트의 소중함이다. 한국일보는 ‘소름 끼치는 마약 충동, 가족도 생명도 없었다’는 명쾌한 메시지를 제목으로 달았다.
한 국회의원이 밤 9시께 호텔객실에서 40대 유부녀와 함께 있던 중 한 남성이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중략) 의원은 "그 여성에게 물건(묵주·默珠)을 받으려고 만났다"고 해명했다. 2월 18일자 사회면(10면)에 실렸던 기사다. 이 사건은 ‘묵주 게이트’로 입방아를 타면서 센세이셔널리즘의 한 사례로 꼽혔다. 중견 의원과 유부녀 교수, 고급 호텔방에서의 ‘묵주 교환’은 충분히 선정적이다. 하지만 이 것만으론 사회면 기사가 될 수 없다. ‘공인의 행동거지는 언제든 공개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섬뜩하게 전했다. 입으로만 윤리선언이니 윤리위원회니 하고 떠든 데 대해 강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한 기사가 많은 신문을 ‘옐로 페이퍼’라 부른다. 1890년대 뉴욕에서 ‘뉴욕월드’와 ‘모닝저널’이 경쟁을 벌이다 인기 연재만화 ‘옐로 키드’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겼다. 결국 그 만화가 양쪽에 동시에 게재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경쟁적으로 흥미를 끌어 모으면서 사실을 왜곡 과장 날조하는 신문을 그렇게 불렀다.
올 초 제주시와 군산시에서 드러난 어린이 불량 도시락 사건 보도에 대해 자극적인 사진까지 실어 보도했다는 이유로 센세이셔널리즘이라 지적하면 안 된다. 그 기사의 메시지 덕분에 사회적 공감대가 센세이셔널하게 확산됐을 따름이다. 외톨이 초등학생이 친구와 가족의 무관심 속에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29일자 8면)나, 공부를 곧잘 하던 한 여고생이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투신했다는 기사(2일자 10면)는 ‘자살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한편 생활고를 비관해 열차에 뛰어든 안타까운 청년, 우울증에 시달리다 아파트에서 투신한 엘리트 회사원, 부인과 싸우다 자녀까지 살해한 비정의 가장 등은 기사화 할 수가 없다.
한국일보는 3일자 사회면에 ‘母情(모정)은 없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엄마가 딸을 유흥업소에 팔아넘겼다는, 선정성이 많은 내용이다. 하지만 말초적 감정과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이 기사를 실었다고 생각한다면 5월 가정의 달에 우리 신문 사회면 독자로서는 곤란하다.
정병진 부국장겸 사회부장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