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제5공화국’은 여러모로 10여년 전 방영된 ‘제3공화국’과 겹쳐보인다. ‘제3공화국’이 그랬듯이 ‘제5공화국’ 역시 쿠데타로 시작해 당시의 급박한 사건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한 군인이 정권을 잡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이는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반복된 과거의 역사 탓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드라마가 시청자의 시선을 빼앗는데 능하다는 얘기다. 시간별로 사건이 나뉘는 빠른 전개 속에 드라마를 이끌어갈 수많은 등장 인물들이 단번에 정리된다. 순식간에 운명이 뒤바뀌는 급박한 전개는 내레이션의 상황분석이 뒤따르면서 더욱 긴장감을 높인다. 그리고 주인공의 ‘카리스마’는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제작진은 ‘제5공화국’이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타 방송사의 드라마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드라마’임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초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인간’으로 묘사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건 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를 위해 주요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기술적인 작업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과 별개로,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한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제5공화국’은 아직 그들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드라마적인 사건에 드라마적인 캐릭터를 부각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딜레마가 시작된다. ‘제3공화국’이 그랬듯이 ‘제5공화국’도 쿠데타 이후 그 ‘인간’이 현실정치를 지배하는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 쿠데타는 그 자체로 드라마적인 사건과 캐릭터를 녹여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현실정치는 그 인간과 분리할 수 있는 더욱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제5공화국’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내레이션의 내용이 아니라, 공적인 역사와 사적인 인간 중 어느 쪽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그들이 역사가 아닌 인간으로, 혹은 드라마 속 캐릭터로 그려지는 순간, 드라마는 캐릭터의 인간적인 모습에 치중하게 되고, 시청자를 캐릭터에 몰입시켜 역사를 ‘드라마’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아니라, 그에 앞서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역사를 희생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적 모습도 역사적 평가가 가능한 범위에서 묘사되어야 한다. 드라마가 캐릭터의 개인적 매력을 강조하며 ‘그도 인간이었음’을 부각할 때, 그 작품은 개인의 카리스마가 주는 쾌감에만 집중하기 쉽다. 그 폐단은 대통령을 신화적인 ‘아버지’로 묘사하며 드라마적 카타르시스와 역사를 맞바꾼 ‘영웅시대’가 잘 보여주었다.
반면 ‘제3공화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인사를 역사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분석, 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침착하게 보여주며 후속 시리즈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인간과 역사, 혹은 시청률과 역사적 진실. 혹은 그것의 조화. 드라마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전두환을 보여주는 ‘제5공화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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