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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할아버지 늦깎이 초등생 "소풍 생각에 잠 설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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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할아버지 늦깎이 초등생 "소풍 생각에 잠 설쳤죠"

입력
200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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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68이유. 설레고 설레는 평생 첫 소풍이라 60은 방금 한강에 버렸으니 몇 살?"

엉덩이를 들썩들썩 흔들던 1학년 1반 오삼옥 할머니가 차창 너머 한강의 은빛비늘을 보더니 반 친구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8살이네, 그럼 난 10살, 허허." 이내 흥에 겨운 답들이 쏟아졌다. 늦깎이 학생들을 태운 소풍버스는 덩실덩실 광릉으로 향했다.

3일은 올해 국내 유일의 성인대상 학력인정 초등학교로 인가받은 양원초등학교(4년 과정)의 첫 소풍날. 햇살 한줌, 물결 한단 버리기 아까운 날씨 덕인지 늦깎이 초등학교 1년생 280명(8개 반)은 새벽부터 교정을 들썩이게 했다. 빨강 노랑 원색 나들이복을 곱게 차려입은 늦깎이 학생들은 교사들의 인솔에 척척 따르며 오전 9시40분 소풍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왁자지껄했다. "아이들 김밥은 내가 선수였는데 내 거 싸려니 왜 그리 떨리누." "가슴이 콩당거려서 새벽 2시까지 잠도 못 잤어. 소풍날에 비가 올까 봐." 이 학교 최고령 학생 박중은(82) 할머니는 "같이 공부하는 학상(학생)들하고 오니 좋지. 물빛이 참 곱네"라며 풍경에 푹 빠져 있었다.

드디어 광릉 도착. 몸은 노구지만 마음은 동심이다. 교사의 "참새" 구령에 맞춰 "짹짹"하며 한달음에 닿은 광릉에서 늦깎이 학생들은 교사에게 광릉에 얽힌 역사를 듣느라 여념이 없다. "임금 묘가 크긴 커. 저것이 지 조카 죽인 수양대군 묘 아니여."

소풍의 하이라이트 점심시간은 한판 잔치였다. 장어며 불고기며 김밥이며 바리바리 싸온 도시락을 교사와 친구들에게 나눠주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소풍에 빠질 수 없는 보물찾기 장기자랑 등 단골놀이도 마음껏 즐겼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맛깔나게 부르고 엉덩이로 이름도 쓰고, 각설이 타령도 선보이는 등 숨겨둔 장기를 마음껏 뽐냈다.

"아이고 다리야."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몸은 지쳤지만 늦깎이 학생들의 얼굴엔 오월의 태양마냥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남양주=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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