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한 살구나무 산책길 가에 밭이 있다. 고추도 심고 상추도 심고 들깨도 심는다. 자세히 보니 그 밭 가에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고 호박을 심었다. 호박 모종이 떡잎을 내고 반 뼘쯤 자란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이것 봐. 호박이잖아." 아내는 작년에 일러주고 올해 다시 일러줘도 모른다. 곡식도 그렇고 들풀도 그렇고 어릴 때 생활 속에 배워야지 어른이 된 다음엔 아무리 일러줘도 다음에 다시 물으면 또 모른다. "어, 알았는데, 모르겠네" 하는 식이다. 내게는 서양 화초 이름들이 그렇다.
한 구덩이에 호박이 두세 포기씩 올라와 있는데, 어느 구덩이는 하나만 달랑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내가 이 호박은 다른 구덩이의 호박들만큼 잘 자라지도 열매도 많이 맺지 못할 거라고 하자 아내는 벌써부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어릴 때 들은 말이 그랬다. 울밑의 호박도 한 구덩이에 두 세 개씩 심어야 저희들끼리 어울려 누가누가 잘 자라나 내기를 하며 멀리 줄기를 뻗어 많은 열매를 맺지 혼자 자란 호박은 겨우 삿갓 하나 덮을 만큼 자라다 멈춘다고 했다. 어른들은 그걸 경쟁으로 보지 않고 어울림으로 보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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