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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글쓰기/ 세계적 작가·석학들 한국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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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글쓰기/ 세계적 작가·석학들 한국온다

입력
200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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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하스미 시게히코/극우파 편협성 비판 ‘日의 양심’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전 도쿄(東京)대 총장을 알게 된 것은 1997년 12월 도쿄대 개교 120주년 기념 초청강연에 가면서부터다. 그는 36년 일본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교토(京都)대 미학과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일본의 최고 엘리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또 65년 소르본느대학에서 플로베르의 소설에 관한 논문으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해부터 모교인 도쿄대에서 불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해 지난해 3월 은퇴때까지 일본의 대학에 큰 개혁 바람을 일으켰다. 은퇴 후 그는 문화 학술 교육 등과 관련한 장관급 보직을 모두 사양하고, 연구 집필 강연 등을 하면서 자유롭지만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그의 경력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일본의 문화적 정수를 대표하는 가장 일본인다운 일본인, 가장 일본적인 일본인일 것이라 추측하기 쉽다. 그러나 여러 차례 만나본 바로 그는 어느 면에서는 가장 비일본적 일본인이며, 비일본적 지성인이다. 유학시절 프랑스 여인과 결혼한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그는 60~70년대에 걸쳐 프랑스의 푸코, 들뢰즈, 바르트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가들을 일본에 소개한 문화 전달자이기도 했다. 이들 사상가들의 글쓰기를 닮은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난해하지만 화려한 새 일본문체를 개발한 문필가로도 평가 받는다. 그의 지적 영역과 체질, 그리고 관점은 아시아적이고 지구적이다.

그는 적지않은 전공 논문을 썼지만 영화비평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럽과 영미철학에도 넓고 깊은 조예가 있다. 그의 담론 영역은 현대문화, 문명으로 확대돼 있고, 교육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관해 주저 없이 발언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강단학자라고 하기보다는 사르트르나 데리다를 지식인으로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전형적인 프랑스적 지식인이다.

이념적으로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온 지구가 지역문화의 한계를 초월해서 하나의 통일된 원리에 의해서 서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21세기 문명의 긍정적 이름으로서의 지구화 즉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찬성하지만, 약육강식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의 극대화로서의 그것은 거부하는 진보주의자다. 이러한 그의 이념적 성격은 구체적 입장과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편협성과 몽매성을 맹렬히 비판한다. 일제 군국주의의와 35년간의 조선강점, 중국 침략, 진주만공격,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를 통렬히 비판한다. 그의 지성은 독선적이 아니라 반성적이다. 그는 폐쇄적이 아니라 개방적인 일본의 지성을 대표한다.

인간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인 그는 체격이 크지만 키 작은 나를 자기 보다 더 큰 사람처럼 대하고,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위를 누리고 있지만 마치 내 후배처럼 나를 대하며, 여러모로 멋쟁이지만 시골사람 앞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촌사람보다 더 겸허하고 검소한 태도를 취한다.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 美 로버트 쿠버/ 화려한 문장 구사 전위작가

20년쯤 전이었는데, 로버트 쿠버가 한국을 방문하여 미 대사관 문화원에서 강연을 하고 난 다음,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자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의 문학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작가는 누구인가요?"

그것은 이제 한국에 막 도착하여 비행기에 내리는 외국 손님에게, 아직 땅이라고는 밟아보지도 않은 나라인 한국에 대해 "인상이 어떠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당하고도 요령 없는 질문이었다.

쿠버는 분명히 똑 같은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아본 눈치였고, 잠시 갸우뚱 침묵을 지키더니, 세계 각국의 유명한 작가 수십 명의 이름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우문현답이었다.

인생의 모든 상황과 전환점이 어느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고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꼭 하나뿐이어야 한다고 믿는 평범한 지식인들과는 달리, 그는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작품이 그에게 모두 영향을 주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시각이 참으로 남다르고도 정확하다고 느꼈다.

내가 번역한 그의 첫 작품은 중편이라고 해야 할지 짧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작품 ‘공개화형(The Public Burning)’이었다. 쿠버라는 작가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던 무렵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무척 특이했다. 두 번째로 번역한 중편 ‘하녀 볼기치기(Spanking the Maid)’에서도 구사한 방법이지만, 라벨의 ‘볼레로’처럼 반복되며 점증강하는 기법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남달랐다. 내가 발표한 중편 ‘낭만적인 남편의 편지’는 후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쿠버의 볼레로 화법을 답습한 작품이었다.

1986년에 작가가 보내줘서 처음 읽어본 그의 본격적인 장편소설 ‘제럴드의 파티(Gerald’s Party)’에서도 줄거리와 흥미를 찾으려는 대중적인 독자층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장식적인 기법을 여유만만하게 펼쳐놓았다. 이러한 자신감과 예술성은 그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떤 평론가는 피터 드 브리(Peter De Vries)를 미국 문단의 마지막 명문가(Stylist)로 꼽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쿠버가 훨씬 더 문장에 공을 들이는 현존 작가라고 믿어진다. 그의 작품들은 기교와 사념적인 사술과 다른 비현실적인 수단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바텔미(Barthelme), 가스(Gass), 나보코브, 핀천(Pynchon), 바트(Barth) 같은 작가들의 변형소설이 보여주는 파괴적인 기법들과 일맥 상통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안정효 소설가·번역가

■ 獨 토마스 브루시히/舊동독 3부작 출간 무명서 스타작가로

1995년 독일에서는 무명작가가 쓴 한 편의 소설이 커다란 주목을 받는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대한 기록이자 붕괴 직전의 동독 사회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당시 무명이었던 한 작가를 일약 독일 문단의 스타로 만들어 놓는다. 바로 이 무명의 작가가 토마스 브루시히다. 그는 소설 ‘우리 같은 영웅들’로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동베를린 태생인 브루시히는 구동독에서 중등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건축 숙련공 직업교육을 받는다. 그 후 그는 박물관 수위, 접시닦이, 공장 노동자, 여행 가이드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다. 90년 독일 통일 이후 그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우리 같은 영웅들’의 성공 이후 현재까지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브루시히는 91년 익명으로 발표한 소설 ‘물의 색깔들’을 통해 문단에 데뷔 한다. 그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우리 같은 영웅들’은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96년 드라마로 각색되어 무대에서 상연되고, 9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독일에서 성공리에 상영된다. 같은 해 10월에는 그가 영화감독 하우스만과의 공동작업으로 제작한 영화 ‘존넨거리’가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후 영화제작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을 보충하여 ‘존넨거리의 끝에서’란 제목의 소설로 발표한다. 이 소설에서 그는 성장기의 젊은이들을 통해 구동독사회의 모습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어떻게 빛나는가’를 발표하면서 그의 동독 3부작이 완성된다. 이 작품 역시 동독 주민의 탈출 행렬이 계속되던 89년의 여름부터 통일이 완수되던 이듬 해 여름까지의 독일 사회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그의 소설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그리고 구동독 사회를 회고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주제가 가진 무거움에 스스로 짓눌리지 않는다. 작품은 엄숙하고 거대한 주제를 다루지만 독자들은 그것을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거대 담론과 관련된, 자칫 난해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 시종일관 동독의 평범한 일상의 묘사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상에 등장하는 역사의 패배자 동독 사회도 결코 음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동독체제에 대한 그의 분노 또한 공격적인 음색이 자제되어 있다. 그의 문체 수법인 위트와 유머, 그리고 풍자와 아이러니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문체 수법의 이면에는 문학 작품에 도덕성과 재미가 공생할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이 깔려 있다. 그의 작품은 독일 소설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일반적 편견에 도전하고 있다. 진지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여러 층의 독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중적 작가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상의 묘사를 통해 거대 담론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는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포스트모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허영재 부산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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