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다. 길거리 낙서꾼쯤으로 치부해 버리지는 않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리의 화가를 만나는 일을 한젬마(35) 는 기꺼워했다. 거리의 화가와 그들의 존재 의미, 그림의 매력들을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예술가가 제 이름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익명성으로 소통하는 것,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는 그 공격성도 재미있잖아요."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2인조 거리의 화가 JNJCREW도 눈이 동그래졌다.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한젬마 역시 그래피티(벽에 스프레이로 그리는 그림)는 아니지만 ‘거리의 작품’을 해봤다.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기념으로 컨벤션센터 벽에 전시했던 ‘비상’과 성북구 길음동 뉴타운 초입의 입체벽화가 그녀의 작품이다.
거리의 화가들도, 대중도 이제 도시 거리와 건물이 ‘커다란 도화지’란 사실을 인정해 가고 있다. 홍익대 앞 건물 주인들은 자신들의 담장이 도화지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새로 건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거리의 화가를 불러 공사장에 둘러친 담장을 그림으로 채운다.
공공기관까지 거부감이 없어졌다. 문화관광부 건물도 그래피티는 아니지만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서울시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의 하나로 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거리의 화가들을 모아 ‘문자행위예술’을 펼친다. 한 페인트 회사는 버스광고에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모델로 등장시켜 ‘Paint Your World’라고 주문한다. 요절한 미국 뉴욕의 유명한 거리 낙서꾼 장 미셸 바스키야(1960~1988)도 별난 존재가 아니게 돼버렸다.
국내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거리의 화가는 30여명 정도.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떠돌이 그림쟁이’가 아닌지 모른다. 남의 벽에 몰래 그림을 그리고는 얼른 도망가는 바밍(Bombing·도둑그림)만 하는 게 아니다. 당당히 전시회도 열고, 많게는 수천만원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영역도 확장중이다.
JNJCREW도 그렇다. 군대에서 총을 든 군인 벽화를 그리면서 만난 스물 일곱의 동갑내기 제이(임동주)와 조(유인준). 그들도 처음(2001년)에는 도둑그림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주문’이 많다. 각종 뮤직캠프 무대 그래피티와 음반 자켓 디자인(서태지, 윤도현 밴드)까지 했다. 작년 ‘서태지 빅콘서트 교감’ 무대 그래피티도 그들의 작품이다. ‘거리에서, 스프레이로’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거나 컴퓨터그래픽 작업도 한다.
인터넷 사이트(www.jnjcrew.com)를 만들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마케팅’도 하고 있다.
한젬마= "장난이 아니에요. 이쯤 되면 낙서 컴퍼니죠. 적어도 돈에 있어서는 ‘인디’가 아니죠. 상업적인 인디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인디예술이 잘 팔린다고 비난해선 안돼요. 그만큼 프로가 됐다는 거죠. 사회가 배고픈 예술만 강요하는 것도 무책임한 거죠. 인디의 개념도 미술의 개념도 달라져야죠."
제이= "인디가 아니라는 말을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적어도 보수를 받을 때는 인디가 아니고 싶어요. 그렇다고 상업성과 타협한 건 아니죠. 좀 더 대중과 호흡하는 스타일이 좋아서 할 뿐이죠. 중요한 건 나만의 스타일을 지키는 것이죠. 처음에는 흑인들의 글씨가 꼬여 있는 폰티스타일을 따라했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히 우리 색깔찾기에 나선 거죠."
그러고 보니 그들의 그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함부로 갈겨버린, 흘려버린’ 것이 아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짜임새가 있고, 구성과 감각이 탄탄하다. 캐릭터가 강한 만화적 느낌이 꽤나 상업적이기도 하다.
한젬마= "그렇다면 JNJCREW의 코드는 뭐죠."
조= "역시 힙합이죠. 살아온 것을 확 풀어주는 느낌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표현. 캐릭터도 나를 닮았죠."
한젬마= "결국 우리 내면의 우리 코드식 표출이죠. 힙합을 알기에 그것을 본능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거죠."
제이="언제까지 그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가가 문제지만…."
대학시절 스프레이 작업을 해봤다는 한젬마는 그것이 가지는 즉흥성과 거리의 미술이 가진 ‘규모의 매력’을 이야기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사회의 수용자세가 결국은 예술의 장르를 넓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JNJCREW에게 부탁했다. "나도 끼워주세요."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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