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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글쓰기/ 세계적 작가·석학들 한국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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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글쓰기/ 세계적 작가·석학들 한국온다

입력
2005.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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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공동 주최하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5월 24~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4년마다 열리는 이 포럼은 각국의 저명 작가와 석학들을 한 자리에 초청, 발표·토론을 통해 문화적 관심과 성취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운 시대의 담론을 찾는 세계적인 행사다.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해외 주요 작가들의 면면을 이틀에 나누어 특집으로 소개한다.

■ 日 오에 겐자부로/‘평화헌법’사수 온힘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 일본의 천황이 수여하겠다는 문화훈장을 ‘전후민주주의자’ 오에 겐자부로는 거절했다. 단숨에 국민적 영웅에서 ‘히코쿠민(非國民)’이 되어버린 그의 등뒤에는 "천황께서 죽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교장의 질문에 벌벌 떨면서 "죽겠습니다. 할복을 해서 죽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아버지 없는 열살 짜리 소년이 서 있다.

그를 젊은 아버지로 만든 큰아들 히카리는, 마치 또 하나의 머리처럼 보이는 커다란 혹을 달고 태어났다. 절망하여 만취한 채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히로시마에서 만난 인류 최초의 피폭자들, 그들의 비참하지만 꿋꿋한 삶이었다. 중증 장애를 지닌 채 살아남은 아들과의 공생을 삶의 테마로 삼게 된 그가, 고통 받는 자들, 소외된 이들, 무방비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목숨들을 향한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일본인이 남들의, 혹은 다른 민족의 고통에 둔감한 것은 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모든 ‘부서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닌 두려움 아픔 절망의 실체를 향해 예민하게 움직여 가는, 마침내 그들의 고통의 뿌리, 존재의 뿌리와 우리를 하나되게 만드는 예민한 촉수와도 같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들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곧 그의 오십여 년의 작품과 사회적 활동이 되었다.

올해로 만 일흔 살이 된 그의 노년은 결코 평온치 못하다. 특히 평생을 두고 영혼의 쌍생아처럼 살아 온, 사회파 영화감독이며 그의 처남이었던 이타미 쥬조(伊丹十三)의 갑작스런 자살은 그에게 엄청난 타격이었다.

최근 오에는 ‘9조 모임’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현행 헌법이 ‘평화헌법’인 이유, 제2장 9조. 평화를 희구하며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어떤 무력도 지니거나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 1945년 패전 이후, 전장에서 돌아온 젊은 윤리교사에게서 소년 오에가 ‘경건하게’배웠던 민주주의의 뿌리가 지금 위태롭다. "헌법은 자신의 삶의 기본"이었고 "평화헌법이 개정된다는 것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하나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이라 여기는 그는, 자위대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쉴새 없이 어린 학생들에게 평화를 강연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일본의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우정’은커녕, 결코 ‘정상’적인 관계조차 아닌, 바로 지금 그가 한국에 온다. 오에 겐자부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혜롭고 맑은 눈을 지닌 이 늙은 작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로 하자.

서은혜 전주대 일문과 교수

■ 中 베이다오/ 중국의 솔제니친

시인 베이다오(北島)는 흔히 ‘중국의 솔제니친’이라고 불리운다. 이 호칭은 그럴 듯하다.

본명이 자오전카이(趙振開)인 베이다오는 1949년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재학 중에 문화대혁명을 맞아 홍위병 활동을 했으며, 홍위병이 해체된 뒤 베이징에서 전기공으로 일했는데 이때부터 몰래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베이다오와 같은 처지의 지식청년들이 행한 문학활동을 지하문학(地下文學)이라고 하거니와, 훗날 유명해진 베이다오의 시 ‘대답’은 바로 이때 씌어진 작품이다.

문혁이 끝난 뒤 베이다오는 지하 출판 시잡지 ‘오늘’에 참여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고 ‘몽롱시(朦朧詩)’라고 불린 시적 흐름의 주역이 되었다. 난해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 ‘몽롱’인데, 베이다오의 몽롱시는 자아의 목소리를 발견하고자 분투했고 정치적 저항성을 예술성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1989년 초에 베이다오는 반체제 인사 웨이징성(魏京生)을 석방하라는 서명운동을 발기했으며 바야흐로 가열되고 있던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 결과 유럽으로 망명하게 된다.

베이다오의 시 '대답>에는 다음과 같은 강렬한 대목이 있다.

"너에게 말하노라, 세계여/ 나는......믿......지......않는다!/ 네 발 밑에 천 명의 도전자가 있다면,/ 나를 천 한 번째 사람으로 생각하라."

6.4 톈안먼 사건 때 바로 이 시가 톈안먼 광장에서 낭송됨으로써 저항시인 베이다오의 이미지가 더욱 확고해졌다. 망명 이후에도 베이다오는 계속해서 중국어로 시를 썼고 해외에서 복간된 왕년의 시잡지 ‘오늘’에 참여했다.

이상과 같이 요약해 놓고 보면 확실히 베이다오는 ‘중국의 솔제니친’이라 불릴 만하다. 소설에 2000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망명 작가 가오싱지엔이 있다면 시에는 베이다오가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호칭은 반체제적 저항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느낌을 준다. 베이다오 시에 저항성이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베이다오 시의 문학적 핵심은 비극적 서정성과 아이러니를 방법으로 삼은 자아 탐색이다. 그 탐색이 중국 현실이라는 맥락 속에서 정치적 저항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지 그 역이 아닌 것이다.

1993년 이래 베이다오는 거듭해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고 있다. 나는 이 지명이 베이다오 시의 정치적 저항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고, 혹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다오 시가 뛰어난 것은 정치적 저항성을 예술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치열한 노력 덕택인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저항성 이전에 자아 탐색의 깊이가 인류적 보편성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성민엽 문학평론가·서울대 중문과 교수

■ 칠레 세풀베다/ 백인의 ‘야만성’ 고발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1949~)는 자유 투사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영원한 방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9년 칠레의 오바예에서 태어난 그는 세계의 환경과 멸종 직전의 동물, 그리고 원주민 보호와 같은 예민한 주제를 다룬다. 그는, 대다수 중남미 작가들이 자국과 중남미에서 널리 알려진 후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 받은 것과는 달리,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답게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인정 받은 특이한 작가이기도 하다.

세풀베다는 실제의 삶에서는 윤리를, 작품에서는 미학을 강조한다. 그의 작품들은 인류학적 문화적 정치적 환경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작가가 현재의 현실 앞에서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의 소설들은 이국적이고 허구성이 강한 가르시아 마르케스 풍의 ‘마술적 사실주의’와 결별하고, 실제의 인물들과 무대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현실의 마술’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든다. 이런 마술은 자연보호와 무책임한 자연말살, ‘야만적 문명’과 ‘문명화된 야만’의 대립을 통해 백인들의 ‘야만성’을 고발하기 위해 이용된다.

세풀베다의 윤리의식과 작품세계는 모두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공산당 청년회에 가입하여 학생 운동을 주도하고,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에서 일한다. 그러나 1973년 피노체트가 이끈 군부에 의해 아옌데 정부가 무너지자,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지만,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외국에서 망명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세풀베다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를 떠돌다가, 마침내 에콰도르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네스코 파견단의 일원으로 슈아르 원주민과 7개월을 함께 지낸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1989년에 출간되면서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다. 익명의 작가에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한 것이다. 아마존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이 작품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애소설을 읽는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를 통해 개발이란 미명아래 원시림 아마존을 파괴하는 백인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을 비난하는 환경소설이다.

1979년에 그는 니카라과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 여단에 가담하여 산디니스타 게릴라와 함께 싸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고문과 폭력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학대를 다룬 ‘귀향’(1994)에 잘 나타난다. 한편 그의 두 번째 소설 ‘지구 끝의 사람들’(1991)은 남극에서 무자비하게 고래를 포획하는 일본 회사의 음모를 파헤친다. 이 이외에도 그는 단편집 ‘외면’(1997)을 비롯하여 ‘감상적 킬러의 고백’(1998), ‘파타고니아 특급열차’(2001), ‘핫라인’(2002) 등의 소설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1996)와 같은 우화를 썼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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