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23:0으로 드러난 재보선 성적표 못지않게 충청과 호남에서 드러난 표심에 크게 당황해 하고 있다. 내심 ‘그래도 내 편’이라고 여겨왔던 기대가 여지없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호남과 충청은 우리당의 주요 지지기반이다. 2002년 대선에 이어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그 경향성은 더 분명해졌다. 그러나 재보선 결과는 이런 추세와는 큰 거리가 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 "20년은 갈 것이라던 행정도시 약발이 벌써 떨어진 게 아니냐", "민주당과 부딪치는 한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낭패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당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다.
박병석 기획위원장은 2일 "더 이상 행정도시만을 이유로 ‘충청표=우리당’이란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며 위기감을 전했다. 충남출신 문석호 의원은 "당장 지방선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행정도시를 예정대로 추진하되 ‘+α’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말처럼 충청권만을 위한 ‘+α’를 내놓기가 여의치 않다. 다른 지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천실수 탓만 하기에는 상황이 자못 심각하다. 당장 공주·연기에서 무소속 정진석 후보가 승리해 중부권 신당이 현실화했다. 신당세력은 ‘자민련 소속 의원·단체장 탈당→연내창당→지방선거에서 대전·충남 장악’이라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했다. 지방선거를 통해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부상한 뒤 대선국면에서 캐스팅 보트까지 행사해보겠다는 야심이다. DJP연합을 의식한 일종의 ‘JP 따라 하기’다.
민주당이 버티고 있는 호남은 상황이 더 안 좋다. 우리당은 지난해 6월 전남지사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이번의 목포시장 등 6곳의 재보선에서 민주당에 전패했다.
민주당에선 벌써 내년 지방선거에 박광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에 이어 정균환 전 사무총장을 전북지사에 출마시켜 재기를 도모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중부권 신당은 우리당의 잠재위협이지만 민주당은 실존장애물이다. 50%에 가까운 호남표의 분산으로 한나라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준 경기 성남중원 재선거가 이를 보여준다.
문희상 의장은 이날 양당간 통합논의가 필요하다고 운을 뗐지만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통합론자인 염동연 상중위원조차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당장은 어렵다"고 했다.
우리당에선 대안으로 지방선거에서 양당의 전략공천도 거론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낮다. 우리당으로선 수도권 승리를 위해 호남표 결집이 절박하지만 민주당은 다르다. 수도권에서 양보를 받아내려면 호남의 상당부분을 민주당에 양보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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