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2일 인촌기념관에서 개최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이 학생들의 반대 시위로 난장판이 됐다. 이 회장은 학생들의 시위로 수여식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자 3층 재단 이사장실에서 약식으로 학위증만 받은 후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고려대 총학생회와 동아리 ‘다함께’소속 학생 등 100여명은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된 이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을 저지하기 위해 행사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인촌기념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건희는 노동탄압 박사’, ‘이건희 경영철학, 납치 감금 폭행 협박’, ‘박사학위 돈 받고 파는 학교 당국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회장은 오후 5시5분께 경호원 15명에 둘러싸여 인촌기념관 앞에 도착했으나, 이 회장의 행사장 진입을 막으려는 학생들과 삼성 임직원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5시20분께야 가까스로 행사장에 들어갔다. 고대 측은 학생들이 행사장으로 진입하려하자 셔터를 내려 차단했으며, 학생들이 이를 저지하려다 셔터가 휘어지기도 했다.
시위에 참가한 문과대 학생회장 이유미(21·여)씨는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노조결성도 못하도록 노동자를 탄압한 사람에게 철학박사 학위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인문학 박사는 사람이 어떻게 올바로 살아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 회장은 그런 자격이 없다"고 성토했다.
당초 인촌기념관 내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학위식은 학생들이 행사장 앞에서 계속 연좌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6시40분께 3층 김병관 재단 이사장실로 옮겨져 약식으로 치러졌다. 이 회장은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등 가족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임직원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위복을 입고 어윤대 고려대 총장으로부터 학위증을 받은 뒤 7시10분께 뒷문으로 나갔다.
고려대는 이 회장의 학위 수여 이유에 대해 "이 회장이 인재와 기술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삼성은 물론 한국 기업 전체의 혁신과 질적변화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답사를 통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고려대에서 뜻깊은 학위를 받게 돼 영광스럽다"며 "인재육성과 기업혁신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기업인은 이 회장을 포함해 15명이며, 명예 철학박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95년),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97년)에 이어 이 회장이 3번째다. 이 회장은 2000년 1월 서울대에서 한국 반도체산업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려 놓은 공로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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