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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춤추는 버스 속에서

입력
2005.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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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눈부신 봄날에 방에 갇힌 것도 감옥이다. 병으로 기동할 수조차 없는 이에게는 차라리 지옥일 것이다. 자유의 관점에서 보면, 바이런의 돈쥬안이 말하듯, 도처에 쇠사슬이 널려있다.

인생의 봄날은 건들바람에 넘겨지는 책장처럼 자꾸만 넘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다한 이유의 사슬에 꽁꽁 묶여 삶의 응달 속에 시들어가고 있는가? 옛날 로마인들은 "굶주림은 참아도 사랑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굶주림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사랑은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현대인들은 말한다. "굶주림은 견딜 수 있어도 외로움만은 견딜 수가 없다"고. 특히 봄날의 외로움은 봄철 알레르기성 독감만큼이나 지독하다. 끊임없이 눈물과 재채기를 불러일으키는 외로움은 깊이 들여다보면 공인되지 않은 사회 문제이다.

4월 마지막날 실시된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잔인하게 패배한 것도 어쩌면 ‘우리’라는 말이 믿음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보다 ‘나 홀로’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난 탓일 것이다. 집권당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인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현란한 말 그림자 속에 국민들의 혼란과 외로움은 깊어만 갔던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외로움은 점점 짙어져 자욱한 분노의 연기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외롭고 소외받은 사람들이 일시에 토한 재채기가 이번 재보선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일단 투표를 통해 동그라미로 마음의 쪽지를 전했으면 그것으로 홀가분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눈부신 5월에 ‘나 홀로 집에(Home Alone)’를 청산하고, 달리는 관광버스에라도 몸을 싣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매화와 벚꽃의 열풍에 이어 우리의 온 산하는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지 않는가? 꽃들을 보면 더욱 외로움과 서러움이 복받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방의 푸름 속에 단풍진 자신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들의 동병상련 속에서 더러는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는지?

돌아오는 길, 버스가 춤을 춘다. 그 안에 비좁은 통로는 갑자기 무도장보다 넓은 홀로 변하는데, 복잡한 머리와 굳었던 허리를 요란한 음악으로 난타를 하고 나면 뭔가 시원하고 후련해지지 않을는지? 춤추며 달리는 고단한 삶이여, 내일 쓰러질지라도, 오 대한민국 버스여!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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