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와 사회보장개혁의 표류, 톰 딜레이 의원의 스캔들, 존 볼튼의 낙마 위기…. 재취임 100일째를 맞아 사면초가에 빠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해법은? 답은 부인 로라 부시였다.
지난달 30일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벌어진 로라의 ‘깜짝 개그’ (2일자 16면)는 부시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치밀한 예행연습까지 거친 계산된 연출로 드러났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로라에게 "이번에 한 번 나서보지 그래"라며 주인공 역을 넘겼다.
백악관의 단골 연설작가이자, 정치 풍자작가 랜던 파빈(56)이 초청됐다. 수주일 간 로라와 파빈은 머리를 맞대고 각본을 짠 뒤 만찬 직전까지 예행연습을 했다.
조크의 큰 테마는 ABC방송의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이었지만 로라는 이 때까지 이 드라마를 시청한 적도 없었다.
부시 대통령이 부인을 내세운 것은 지지율 추락 때문이란 관측이다. 지난달 말 USA투데이와 CNN의 의뢰로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 그의 지지도는 최저치인 45%에 그쳤다. ‘정치연설을 시키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청혼을 수락한 로라가 ‘위기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선 셈이다.
파빈은 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를 위기에서 구한 적도 있다. 당시 낸시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 결혼식에 고가의 옷이 가득찬 여러 개의 트렁크를 지참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 파빈은 낸시의 깜짝 댄스 쇼를 기획해 인기를 만회하도록 했다. 파빈은 또 로널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연설, 그리고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정치 데뷔 연설을 썼다.
파빈의 라이벌인 민주당의 마크 케이츠(41)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유명한 조크들을 썼다.
케이츠는 "유머는 정치의 다른 수단"이라며 "정치인의 호감을 높이는 효과적인 무기이며 (유머 없이) 정직하게만 다가서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먼저 자기 자신을 깎아 내려라" "필요하면 이를 반복한 뒤 남을 풍자하라" "정치유머는 개인적 소재일수록 효과적이다"라는 것 등이 파빈이 제시한 정치인의 유머 원칙들이다. 힐러리에게 외면당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무렵의 ‘나 홀로 집에’라는 말로 웃긴 것은 대표적 예가 된다.
그러나 정치 유머는 여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은 한 만찬 회견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어딘가에 있다"며 테이블 밑을 살피는 시늉을 했다가 두고두고 민주당의 역공을 받았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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