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만 쌓인 日친구와의 대화
어제 일본인 친구와 한일 역사청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일본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끊임없이 사과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 유학생 지원 등 계속적으로 배상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나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민간재단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받는 사과이며 배상이라고 이야기했고 일본이 사과하는 방식은 너무 간접적이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일본을 ‘피해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은 큰 원폭 피해를 입었는데 미국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처럼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냐고 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는 힘의 관계가 작용한다. 그렇지만 사과와 배상은 다른 문제다. 사람도 큰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는데 국가라고 다를까. 친구는 모든 나라가 자국민의 이해를 생각해야 하는 만큼 위안부 문제도, 전쟁 배상과 사과 문제도, 일본 국민이 불편해 한다면 못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기적인 주장 앞에서 나는 막막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나아가고자 하더라도 주위에서 놓아 두지 않을 거라고. 국제관계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무시할 수는 없는 거라고. 우파가 득세하는 일본이 역사청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쉽게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만 봐도 국내에서의 역사청산이 그렇게 어려운데,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가 개입되면 두 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 역사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캐내서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당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건 정말 어려웠다.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교육받은 대학원 학생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데, 일본의 우파들은 얼마나 더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유명하지도 않은 우파 교과서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왜 그렇게 반발하는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말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 친구의 견해를 모든 일본인의 것으로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놓고 수많은 주관적인 견해가 경쟁하는 현실 앞에서, 정당성과 도덕성이 이해관계보다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진다. 역사청산은 분명히 커다란 부담이고, 책임감이며, 빚이다. 그러나 청산 없이 산뜻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다른 나라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친구와의 대화는 내게 너무나 어려운 퍼즐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조각나 있는 퍼즐을 어떻게 맞추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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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전 한 닢, 덕담 한마디…훈훈한 지하철
지하철 안에서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대개 무표정하다. 한두 사람은 미소를 살며시 띠고 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서 웃음을 억누르는 표정도 이따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대부분은 피곤한 얼굴들. 옆 사람 어깨에 계속 방아를 찧어가며 정신없이 졸고 있는 사람, 다리 쩍 벌리고 앉아 구두를 벗은 채 한발을 올려놓고 있는 사람, 자기집 안방인 양 소리소리 질러가며 휴대폰을 받는 사람, 그리고 복잡한 승객들 틈새로 유유히 지나가는 걸인들…. 100원짜리 동전 몇 개, 1,000원짜리 지폐가 바구니에 들어간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선행을 베푼 그들의 표정은 돈을 받은 이들보다 훨씬 밝아보인다.
오늘도 결혼식에 다녀오다가 지하철 안에서 걸인을 만났다. 휠체어에 왼쪽 다리만 올려놓고 앉은 60대 할머니는 껌을 팔고 있었다. 1,000원을 건네주자 할머니는 껌 한 통을 주며 500원을 거슬러준다. 할머니는 한 마디를 잊지않고 건넨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되시고 복 많으세요." 단돈 1,000원에 덕담 듣고 껌 한 통까지 손에 쥐고 있으니 절로 엔돌핀이 돈다.
옆에 서있던 청년이 껌을 산다. 그 옆에 있던 여대생도.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은 전파속도가 빠른 것일까? 그 할머니는 그들에게도 덕담 전하는 걸 잊지 않는다. 건성이 아니다. 정성이 깃든 답례의 표시다. 할머니의 밝은 표정, 낭랑한 목소리. 선행을 베푸는 사람보다 더 기분좋은 건 그 광경을 보는 주위 사람들이다. 할머니는 구걸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선행을 가르치는 것 같다. 지하철 안 승객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보인다. 나까지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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