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재미난 전시회다. ‘Cool &Warm’,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전시회에서는 30대에서부터 60대까지를 아우르는 한국 중견작가 19명의 작품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현재’를 느껴볼 수 있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회화위주의 전시회가 아니라 설치미술과 비디오 예술, 조각 등 다채로운 분야를 혼합했다. 이는 관객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면서 미술의 개념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다. 전시장에 들어서 벽에 걸린 그림을 보려는 순간, "지이익~"앞에 있던 화분이 튀어나와 움직인다. ‘바퀴가 달렸나?’ 가까이 들여다보려니 또 "지이익~"소리와 함께 멀어진다. 안규철 작가의 ‘쓰레기 로봇’이라는 작품이다. 쓰레기들을 로봇으로 만들어 센서를 부착한 이 작품은 전시장 여기저기를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닌다. 무언가가 다가서면 방향을 바꾸는 로봇은 인간 삶의 끝없는 서성거림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닥에는 까만 선으로 그려진 농구선수가 슛을 날리고 있다. 벽에 걸린 4개의 화면에는 2개씩 담긴 농구공들이 걸을 때 마다 아래 위로 움직여 공이 튀는 듯한 느낌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하는 렌티큘러라는 재료를 사용한 이 작품 옆에는 실제 슛보드도 설치돼 있다. 이는 공간과 시간과 사회적 의미를 결합시켜 전시공간에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해온 윤영석 작가의 작품이다.
안쪽에는 음악이 흐르고 벽의 부분, 부분이 보라색의 기하학적 무늬로 채워져 있다. ‘그림은 어디있지?’ 작품 설명을 들여다 보고서야 전시장의 벽과 바닥, 천정을 페인트로 칠한 홍승혜 작가의 작품임을 알았다. 작품이자 공간의 배경이 되어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과 어우러지는 독특한 느낌,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 오인환씨는 ‘진실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나프탈렌을 이용해 작업했다. 시멘트 모양으로 덮인 나프탈렌 밑에는 그가 하고싶은 말들이 잔뜩 적혀있다. 나프탈렌이 대기 중으로 날라가면서 우린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황토색 개 일곱 마리가 관객에게 머리를 들이대고 달려든다.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양 옆에서 수십마리의 개들이 떼로 몰려와 화들짝 놀라게 한다. 양 옆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 의도적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조덕현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구림마을 프로젝트과 샌프란시스코 프로젝트 등 ‘발굴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통해 고고학자나 구비문학가 등과 협업해 역사적 맥락에서 누락된 부분을 재검토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다.
옆 전시장은 깜깜하다. 그 안에 놓인 가로, 세로 2m가 넘는 검정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저 안에는 또 뭐가 들어 있을까?’ 빛이 새어 나오는 박스의 뚫린 구멍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핑크 색의 살찐 소파가 비스듬히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뚱뚱한 소파, 그리고 이것을 관객과 등을 지도록 앉힌 이유는 뭘까. 페미니스트인 윤석남 작가는 이 소파를 통해 살찐 사람이 세상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움츠려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쿵! 쿵! 쿵!" 30초에 한번씩 전시장에 심한 진동이 느껴진다. 3m 짜리 긴 유리관 안에서 180kg나 되는 스테인리스 공이 물살에 휩쓸려 왔다갔다를 반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동은 크게 느껴지고 소리는 점점 더 공포스럽다. 심재현 작가가 쓰나미의 악몽을 표현한 것이다. 김범, 김수자, 김영진, 문범, 노상균등 또 다른 12명의 작품들이 궁금하지 않나? 가서 직접 느껴보자. 전시는 6월5일까지. (02)737-7650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