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족여성 사학 숙명여대가 내년으로 다가온 개교 100년을 앞두고 제2의 중흥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1995년 ‘제2의 창학’을 선언한 이래 질적 양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온 숙명여대는 2020년에는 우리나라 각계 지도자의 10%를 키워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여성사학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아래 총장을 비롯 전 ‘숙명인’이 한마음으로 뛰고 있다.
◆ 유비쿼터스 캠퍼스와 섬기는 리더십 교육
지난 10년간 숙명여대는 괄목할 만한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캠퍼스 대지도 6,000여평에서 3배가량 늘어난 1만8,000여평이 됐고 여기에 건물 17개 동이 새로 들어서 학생 수도 8,000여명에서 1만 2,000여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넓어진 교정보다 더 눈부신 변화는 ‘유비쿼터스 캠퍼스’ 구축이란 질적 성장에 있다.
"여성은 컴퓨터에 약하다"라는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숙명여대는 10여년간 디지털 분야에서 국내 대학의 각종 기록을 세웠다. 1998년 무선랜 서비스 실시와 2000년 원격대학원을 설립한데 이어 2002년에는 PDA 휴대폰 등 개인 이동통신기기를 통해 수강 신청과 도서 대출 등 학사행정 전반은 물론 학자금 대출까지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 캠퍼스를 구현했다. 학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 3월에는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 기반의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연구와 교육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숙명여대는 또 이경숙 총장의 ‘미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 남을 섬길 줄 아는 부드러운 여성형 리더십이 바람직하다’는 지론에 따라 21세기형 여성리더십 교육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총장이 취임한 1994년부터 학교는 ‘섬기는 리더십’ 교육에 중점을 뒀고 이 같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하는 리더십 개발 특성화 대학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에는 신입생 2,200여명 전원을 리더십교양학부에서 맡아 교육하고 있다. 리더십교양학부는 일종의 기초대학으로 사회 저명인사와 CEO들을 초청해 특강을 여는 것은 물론 리더십의 기본이 되는 의사소통능력 개발 등을 교육한다.
학생자치 그룹과 학내언론사 및 학사 모니터, 통역봉사단 등 26개에 이르는 봉사활동 단체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열어둠으로써 학생 스스로 ‘섬기는 리더십’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최고 여성지도자 아카데미 ▦차세대 여성지도자 육성캠프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보통신(IT) 교육 프로그램 등 여성지도자들의 리더십 함양과 디지털시대 적응을 위한 재교육을 돕고 있다.
◆ 다양한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줄이어
숙명여대는 올해부터 ‘창학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 대학 아시아여성연구소가 지난 26일부터 연구자들이 수집해온 귀중한 여성사 관련 자료들을 일반에 공개하는 ‘한국여성근현대사 100년전’을 열고 있는 것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세계적인 여성지도자들을 대거 초청해 국제학술회의와 워크샵을 개최한다.
근현대 민족여성 교육의 역사를 기록하는 다양한 편찬사업도 벌인다. 올 2월에는 1995년 제2 창학 선언 이후의 회고담을 담은 에세이집 ‘청파골 사람들’ 2권을 발행한 데 이어 내년 중으로 ‘숙명 100년사’ ‘숙명100년사 화보집’ ‘숙명100인의 회고록’ 등 다양한 기념 서적을 발간할 계획이다.
또 내년 5월22일 개교기념일을 전후한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타임캡슐 봉인식, 기념음악제, 무용제 등 화려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또 숙명여대의 자랑인 정영양자수박물관과 문신미술관이 준비중인 특별전시회도 올 하반기부터 내년 초 사이에 개최된다. 숙명여대는 이 같은 다양한 행사를 인터넷을 통해서 국내외 동문들에게 중계할 예정이며 온라인 퀴즈대회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1948년 대학 승격…홍신자·신달자 등 예술분야 동문들 활약
물밀 듯 밀려온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민족 부흥을 위한 근대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고종 황실이 1906년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 근처인 용동궁(龍洞宮)에 학교 터를 정한 뒤 최초의 민족 여성사학인 명신(明新)여학교를 세웠다.
명신여학교는 황실로부터 하사 받은 황해도 전라남도 경기도 일대 농지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운영됐으며, 이후 1909년 숙명고등여학교 1911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이름을 바꾸다 1912년에는 현재 학교법인의 전신인 숙명학원으로 개명되면서 현대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숙명학원은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를 세웠고 초대 교장에 일본 유학파 출신의 대표적 여성지식인 임숙재(任淑宰)씨가 취임했다. 광복 이후 숙명여전은 1948년 숙명여자대학으로 승격됐고 1955년에는 지금의 종합대학 체제를 갖추게 됐다.
100년이라는 긴 역사만큼이나 숙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수많은 동문들을 배출했다.
가장 진출이 두드러진 분야는 여성의 활약이 돋보이는 문화 예술분야. 소설가 신달자 은희경씨를 비롯해 뮤지컬 배우 문희경, 무용인 홍신자, 방송인 이금희 정미선 이익선 김창숙 유난희씨 등이 대표적인 숙명 동문들이다.
최근에는 정계 진출도 활발해져 방송인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등이 있으며, 재계에서는 우성화 티켓링크 대표, 형난옥 현암사 대표, 정춘희 동아일렉콤 이사 등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밖에 이숙자 전 성신여대 총장과 최근 방송을 통한 요가 강의로 웰빙 열풍을 선도했던 원정혜씨 등도 이 학교가 배출한 인물이다.
전성철기자
■ 앞서가는 CEO 이경숙 총장/ "여성들이 직접 학사주체로 참여 女大강점은 유효"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사진) 앞에 늘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CEO형 총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총장은 1994년 교수들의 직선으로 총장에 선출된 뒤 적자 투성이였던 학교를 맡아 12년 만에 부채 비율 ‘0%’를 실현해 건실한 대학을 일구어냈다. 이 학교 수석입학과 수석졸업자 출신인 이 총장에게서 개교 100주년 준비과정과 21세기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 총장 취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총장에 선출되고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책상 위에 7억8,000만원짜리 세금 고지서가 선물로 올라와 있을 만큼 학교 재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어려움보다 더 절실했던 것은 학교 안팎에 가득찬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급한 교육 인프라 확충을 위해 발전기금 1,000억원 모금을 선언했을 때도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팽배했다. 그러나 동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등록금 한번 더 내기’ 운동을 벌이면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동문들의 애교심도 덩달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오늘날 일부에서는 여대의 사회적 소명이 끝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미미하다. 지난해 전국 대학의 여성교수 비율은 8.8%에 불과하고 5급이상 공무원의 여성 비율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직접 교육과 학사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폭넓게 보장된 여대의 강점은 유효하다고 본다. 리더십은 정책결정에 얼마나 참여해봤는가라는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숙명여대 출신들의 취업률이 80%대 이상을 유지하는 것도 그 같은 장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목표는.
"우리는 2020년까지 국내 각계 지도자의 10%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가령 국회의원의 10%, 국내 기업 CEO의 10% 하는 식이다. 앞으로는 남을 배려하고 섬길 줄 아는 부드러운 여성적 리더십이 환영 받는 지도자상 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을 통해 봉사와 헌신이 몸에 밴 숙명여대생들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전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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