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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피플/ 티베트 스님들 미국 순회 ‘모래 만다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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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피플/ 티베트 스님들 미국 순회 ‘모래 만다라 수행’

입력
2005.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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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승복 차림의 티베트 스님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는 저마다 깔때기 같은 도구를 쥐었다. 조그만 쇠막대로 깔때기를 톡톡 두드릴 때마다 형형색색의 도료가 나무 도판에 떨어진다. 정교하고도 화려한 불화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예술 박물관(www.slam.org) 관람객들은 벌써 며칠째 이들의 작업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스님들은 지금 티베트 전통 만다라(曼陀羅·밀교에서 발달한 상징 형식을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에 색을 입히는 중이다. 주재료는 모래다.‘착푸르’라고 하는 깔때기 속에는 인도 카르나타카산(産) 흰색 대리석을 갈아 만든 모래알들이 들어 있다. 스님들은 식물성 안료로 염색한 수백만 개의 모래알로 꽃과 나무, 원과 사각형 등 각종 문양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복잡하고도 세밀한 만다라 도안에 색채를 불어넣는다. 몇 시간 씩 정성을 기울여도 채색되는 면적이 손바닥 크기에 불과할 만큼 극도로 정교한 작업이다. 5~6명의 스님이 지난 주 화요일(4월 26일)부터 마치 참선 수행을 하듯 밤낮 없이 이 작업에 정진하고 있다.

‘모래 만다라’수행의 하이라이트는 그림을 완성한 후다. 까칠까칠한 모래의 질감이 숨쉴 듯 살아 있는 놀라운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순간, 승려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만다라를 해체한다. 예술혼과 땀의 결정체인 만다라의 창조와 파괴…. 그것이 수행의 주제다. 지난 주 염불과 독경, 찬불로 이어지는 장엄한 예식과 함께 시작된 만다라 그리기의 마지막 순서는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해체한 만다라에서 나오는 모래알들은 관람객들에게 한 움큼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박물관 인근 저수지에 뿌린다.

"만다라를 파괴하는 것은 삼라만상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기묘한 아름다움도 찰나일 뿐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에겐 세상 것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작업 중인 텐진 펜톡(25) 스님은 29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 미네소타주 아메리카 몰 전시회에서는 만다라를 해체하는 순간 몇몇 관객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행사장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펜톡 스님은 "만다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스님들은 모래알 하나하나에 존재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며 "그것이 허무하게 해체될 때 더 위대한 치유의 기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티베트 스님들의 만다라 수행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시작됐다.‘예술을 통해 세상을 치유한다’는 주제로 미국 전역을 돌며 순회 전시회를 하는데 수익금은 가난한 티베트인들의 교육 및 의료 지원에 사용하고 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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